김학수 한국체육대학 초빙교수

박세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세계 골프를 주름잡았다. 그리고 역사상 최연소로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박세리가 1998년 새내기로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을 발휘하며 감동적인 우승을 하는 모습을 본 신지애는 당시 11살 때 “나도 저렇게 되겠다”는 꿈을 키웠던 ‘박세리 키드’였다. 11살 나이 차이가 나는 둘은 한 때 ‘큰 언니와 막둥이’ 정도로 골프에 관해선 도저히 비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모습은 영 반대다. 박세리는 올 LPGA 상금랭킹이 30위권을 맴돌고 있으며 신지애는 LPGA 첫 해인 올해 한국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상금랭킹 1위를 이미 확보한 상태이다. 둘의 비교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박세리는 지난 수년간 영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32세, 골퍼로서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다. 천부적인 골프감각은 여전하고 드라이버 등 기술적인 면에서는 별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우승을 하기가 쉽지 않다. 과감한 플레이와 카리스마 넘치는 박세리의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이미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한때 박세리의 경기가 있을 때면 유명 연예인 매니저 등 각계의 인사들이 대거 몰려다니며 ‘박세리 군단’을 이루었으나 이제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스폰서도 좀처럼 붙지를 않는다. 삼성, CJ 등 굴지의 대기업이 스폰서를 맡았으나 현재는 스폰서 없는 ‘나 홀로 골퍼’이다. 

박세리가 무너진 것은 수백억 원의 많은 돈을 벌어 ‘헝그리 정신’이 사라졌으며 정상을 차지하겠다는 목표가 상실된 때문이라는 게 골프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박세리가 퇴조를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신지애는 욱일승천의 기세로 세계 골프를 호령하고 있다. ‘골프 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의 은퇴이후 무주공산이 된 세계 골프의 지존자리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박세리가 ‘타고난 골퍼’라면 신지애는 ‘만들어진 골퍼’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등학교 때 양궁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신지애는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으로 세계 정상급 골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신지애와 실제 라운드를 했던 필자의 언론계 지인은 그에게서 “저는 원래 침착한 성격입니다. 게다가 승부근성도 아주 뛰어나 골프에 딱 맞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키가 155cm로 골프하기에는 다소 작지만 멘탈에서는 골프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실력의 90% 정도를 경기에서 발휘한다는 신지애는 드라이버 거리는 평균 230m 정도로 박세리 등에 비해 다소 짧은 편이지만 마치 기차 레일 위에서 달리는 것처럼 드라이버 샷이 곧바로 날아가 페어웨이 안착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헝그리 정신’이 무섭게 살아있다. 눈물겨운 가족사가 그를 아주 강하게 만들었다. 중3 때 어머니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고 동생들도 큰 부상을 당했던 신지애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부지런히 공을 때렸다. 큰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강인한 멘탈은 이러한 힘든 가정환경에서 축조된 것이었다. 정확한 어프로치와 뛰어난 퍼팅력은 강력한 정신력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신지애는 올 초 국내 일류 증권회사인 미래에셋과 5년간 70억 원에 메인스폰서 계약을 맺은 뒤 LPGA에 뛰어들어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상금 톱 랭킹에 오르고 세계 골퍼의 최정상을 차지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박세리와, 박세리가 걸었던 길을 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신지애의 성패는 중요한 교훈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를 갖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막 세계 정상의 문턱에 올라선 신지애가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정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세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정상에 서기 전과 같은 불같은 도전정신과 목표의식을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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