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로봇연구부 공학박사 조영조

이번 11월에도 67만여 명의 수험생이 전국에서 대학수능시험을 치렀다. 모든 수험생들은 시험결과를 토대로 문과와 이과를 구분해서 자신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올해 대다수 4년제 사립대학 신설학과는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없애고 실용과 통합을 강조해서 주목을 끌고는 있으나, 수능시험의 문/이과 구분 기본 틀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교차지원이라는 궁여지책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누구나 고등학교 초반기에 문과 또는 이과로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 직업군의 소속을 둘로 갈라 선택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선택의 시기가 적절한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그 선택에 의해 다른 쪽 학문에 담을 쌓게 되며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적성보다는 대학입시에서 어디가 유리한지에 대한 생각이 앞서는 경우도 많고, 문과와 이과의 구분으로 사람의 성향을 구별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우스갯소리로 ‘LiFe’란 단어를 보고 문과인은 ‘삶’이란 뜻으로 받아들이는 데 반하여 이과인은 화학원소기호를 연상하여 ‘철화리튬’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또, ‘염소’라는 단어에서 문과인은 동물을 떠올리지만 이과인은 화학기호를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과학기술자가 글이라도 잘 쓰거나 말을 잘하면 문과체질이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2010년 수능에서 과학탐구를 선택한 이과생은 22만 명으로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30여 년 전 필자의 고교시절에는 이과와 문과 비율이 7:3이었는데 지금은 3:7로 역전이 된 것이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대학졸업자의 70%는 고교시절 이후부터 수학과 과학에 담을 쌓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점점 어려운 학문에 대해 외면하고 쉽게 공부하려는 풍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 고등학교에는 문과, 이과가 없다. 사회학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려 하더라도 수준 높은 수학과 과학을 이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게을리 하고 과학이나 공학 분야 진출을 꺼려하면서 국가경제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판단하여, 최근 미국 과학재단에서는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강화 프로그램이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저학년부터 수학과 과학을 담쌓고 지내는 70%의 대학졸업자들로는 우리나라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울 것 같다. 현재 세계 10여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30년 전 70%의 이과전공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인문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하더라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유지하도록 STEM 강화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이다.

미래의 산업은 인문학과 사회학이 과학기술과 융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콘텐츠 산업에서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이를 지원해주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더해질 때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미래 산업분야에서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문과, 이과 구분을 없애야 할 것이다.

곧, 대학입시에서 그 구분을 없애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교차지원 허용이라는 미봉책이 아니라, 수학 과목의 일원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과목의 점수 동시반영 등 구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교육에서도 이공계에서는 인문 사회학적 소양을, 인문 사회계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 커리큘럼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래서, 한번 이과는 영원한 이과가 아닌, 문과와 이과의 덕목을 모두 갖춘 균형 있는 인재의 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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