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정(향린교회) 담임목사 인터뷰

향린교회가 한국전통 고수하는 이유

▲ 한국 전통가락을 이용한 국악찬송가의 창시자 조헌정(향린교회) 목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종소리 대신 징소리로 예배를 시작하는 독특한 교회. 향린교회는 한국 전통가락을 예배에 접목시켜 최초로 국악찬송가를 발간한 교회다. 작년부터 자체적으로 국악컨퍼런스도 개최했다.

기존 서구식 찬송가를 한국식 찬송가로 만들기까지 앞장은 선 이는 누굴까. 한국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아기자기한 교회 내부를 감상하는 가운데 한복을 차려입은 조헌정 담임목사를 만났다.

그는 다소 생소한 국악찬송가를 소개하기 위해 교회의 역사를 되짚었다. 때는 6.25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몇몇 30대 초반 청년 신앙인들이 전쟁의 후유증을 앓거나 사회적으로 약자인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때는 용공정책 찬반 여부로 장로교가 신학논쟁을 벌여 진보와 보수로 갈린 시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민족 분단의 연속이라고 본 청년들은 ‘6.25전쟁으로 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돌보기보다 교단이 서로 싸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교회가 아닌 신앙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이 신앙공동체가 40년이란 세월을 거쳐 오늘의 향린교회가 됐다. 교회라는 명칭만 바뀌었을 뿐 신앙공동체의식은 여전하다. 조 목사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이것을 화두로 삼고 있다”며 그동안 신앙공동체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설명했다.

또 자체적으로 만든 ‘통일공화국 헌법(초안)’은 교회가 얼마나 우리의 민족이 하나가 되기를 염원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나아가 교회가 안정이 된 뒤 교회갱신선언문을 발표했다. ‘예배와 문화는 민족 정서를 담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이 선언문이 국악찬송가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국악찬송가. 만들기도 순탄치 않았다. 국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고, 모델로 삼을 기존 국악찬송가도 없었다.

조 목사는 “처음에는 불협화음에 음정이 끊기는 등 많이 힘들었죠. 특히 교인들이 서양음악에 굉장히 익숙했기 때문에 갑자기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을 거부도 했었고 반발도 있었습니다”라며 한 때를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국악찬양의 가치를 밀고 온 그의 불굴의 의지는 이제 대형교회도 배우러 오는 교회, 외국인들도 방문하는 교회로 성장하는데 이르렀다.

조 목사는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예배를 드리면 뭔가 다른 걸 듣고 배우고 깨달아야 할 텐데 언어만 다르지 처음부터 똑같은 순서, 똑같은 음악을 써버리니 이게 문제다”며 우리네 전통문화를 활용하지 못하고 외세문화가 기준인양 수용해 버리는 모습을 지적했다.

▲ 조헌정(향린교회) 목사가 국악찬송가를 만들게 된 배경을 교회 역사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어 점점 사라져 가는 한국 전통문화의 현실을 볼 때, 조 목사는 “이런 상황이 발생된 근간은 지난 외세의 영향이 컸다”며 “보수적인 서양교사들이 와서 한국의 문화를 인정치 않고 무조건 서양문화를 심어줬던 것이 문제가 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한 “일본 식민지시대 때 우리의 것을 스스로 무시하도록 민족말살정책을 폈고 그때부터 우리의 것이 무시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됐다”며 한국의 억울한 역사를 개탄했다.

그는 “아직도 한복을 입으면 이상하게 쳐다본다”며 속내를 비쳤다. 이 한 마디가 한동안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한국전통을 잊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런 실정을 잘 아는 조 목사는 매년 꾸준히 국악 컨퍼런스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아예 교인들이 스스로 국악찬양선교단(예향)을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교인 스스로 국악찬양을 홍보하기까지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힌 걸까. 아니면 따뜻한 봄이 되면 귀향하는 제비처럼 한국인의 정서가 ‘우리의 것’을 찾았던 것일까.

향린교회는 젊은 사람들도 꾸준히 전도되어 온다. 전통문화가 나이 지긋한 분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깬 것이다.

그는 찬양을 넘어 설교에서도 신앙과 더불어 한국을 알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 매주 ‘이 땅을 살아가는 예수들’을 주제로 설교하는 조 목사는 “초대교회 역사의 인물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다 보니 자연히 우리 민족과 한국의 역사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초대교회 역사에 한국의 역사를 비춰볼 수 있다는 말이다.

40년의 역사와 함께한 향린교회. 조 목사는 국악예배와 더불어 사회 약자들과 함께 하는 선구자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그가 앞으로 한국 전통역사와 문화에 힘쓰는 의식이 사회 곳곳에서 봄을 맞아 꽃을 피우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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