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천문학회 노중평 회장

▲ BC 1600년경으로 추정되는 서유럽 청동기 시대의 유일무이한 네브라 천반. 서유럽의 명두로 볼 수 있는 신물이다(사진제공 : James Park <레이니어 신당>).

옛 것은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역사를 옛 것이라고 버리기 시작한 지 오래 되어 우리 역사가 1만년이 되는 지 5천년이 되는 지 알지 못한다. 우리 역사가 우리 역사인지 중국의 역사인지도 구별하지 못한다. 역사뿐만이 아니다. 문화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바로잡아야 할 것이 많은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바로잡아지는 것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에게 잘못 알려져 대부분의 국민이 오해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와 종교와 문화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을 찾아내어 책을 써서 여러 번 출판하였다. 이렇게 출판한 책 중에서 2가지가 작년에 출판한 ‘무교’와 금년에 출판한 ‘남사고의 나라 우체모탁국’이다.

‘무교’는 우리가 무교에 대하여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가를 밝힌 책이고, ‘남사고의 나라 우체모탁국’은 우리가 500년 전 명종 때의 학자 남사고 선생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 알고 있는가를 밝힌 책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종교와 철학과 사상과 문화가 심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짚어내지 않는다. 개인과 집단의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이므로 덮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왜곡을 옹호하려는 붕당주의와 독식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을 독식하는 시대가 아니라 공유하는 시대이므로 많은 지식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집단지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의 지식이 국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외국과 교류하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가 미신이라는 누명을 씌워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린 무교를 어떻게 다시 찾아내고, 누군가 걸쳐 준 누더기를 벗겨내고, 숨겨진 알몸을 드러내 게 할 수 있을까.

우선 내가 할 일은 우리가 미신이라고 버린 무교가 썩어가고 있는 쓰레기통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쓰레기통은 우리의 무지와 몰상식이라는 의식 속에 방치되어 있다. 우리는 이 쓰레기통을 보기에 흉물스럽고 악취가 난다고 멀리 차버렸다. 그래서 단군조선이라는 쓰레기하치장에 버려져 있다. 우리가 중화와 일제와 쏘제와 미제라는 교활한 사기꾼들에게 우리의 넋을 팔아넘긴 이후로 돌보는 사람 없이 썩어가고 있는 무교라는 이름의 밥덩이를 찾아내어 맑은 물에 헹구어 다시 먹을 수 있는지 먹을 수 없다면 다른 것으로 가공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무교는 우리 상고시대 역사에서 나온 종교이다. 단군왕검이 세운 나라 조선에서는 무교를 무천(舞天)이라고 하였다. 무천이란 무당 여자(무녀)가 하늘을 향하여 춤을 춘다는 말이다. 지금도 굿에서는 무녀가 하늘을 향하여 춤을 추는데 그 형식이 다양하다.

붉은 색의 덧옷을 입고 붉은 색의 갓을 쓰고 춤을 추기도 하고, 흰 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쓰고 춤을 추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시대의 군복인 장군복과 조선왕조시대에 가수나 무희가 임금님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출 때 입던 옷인 창부 옷을 입고 춤을 추기도 한다. 이때 추는 춤을 거성(擧聖)이라고 한다. 거성은 “성인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단군왕검이 살아계셨을 때는 한국을 세운 한인천제와 배달나라를 세운 한웅천왕과 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을 “성스러운 세 분의 임금”이라는 뜻을 가진 삼성(三聖)이라고 하였다(‘선조실록’ 권 89 선조 30년 6월 경오). 거성은 이분들이 거동하신다는 뜻이다.

붉은 덧옷과 붉은 갓은 춤추는 무당(무무, 巫舞)이 삼성을 굿판에 모시기 위하여 입는 무당 옷이다. 무당이 겉모양새를 이렇게 차리고 거성을 하면 이상하게도 단군왕검이 찾아오신다. 이때 찾아오시는 단군왕검의 영을 황해도 굿에서는 ‘초감응’이라고 하고, 한양굿에서는 ‘도당’이라고 하고 ‘무당내력’이라는 책에서는 그냥 ‘성령’이라고 하였다.

조선이 진시황 8년(BC 239)에 진에게 멸망했을 때 제47대 고열가 단군이 황해도 구월산에 들어가 사당을 지어 삼성당(三聖堂)이라 부르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당주무당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이 전통은 조선왕조가 일제에게 멸망하기 직전까지 이어져 왔다.

조선왕조시대엔 당주무당을 삼성무당이라고 하였고, 나라에 세금을 내는데 지금의 차관급의 고위 공무원이 내는 세금과 같은 급수의 세금인 구리 6근을 업세(業稅)라는 이름으로 내었다. 당시에 일반 무당은 구리 1근의 세금을 내었고 나라무당은 구리 9근의 세금을 내었다.

고열가 단군이 무슨 이유로 여자 무당을 삼성당의 당주무당으로 임명했을까? 단군조선은 왕검의 적통을 이어 왕검의 자리를 계승할 때 14,000년 전에 마고 할머니가 물려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주어 적통을 잇게 하였다. 이 유습은 마고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었다. ‘천부삼인’은 해와 달과 북두칠성을 새긴 돌이나 구리거울이다.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들어오면서 돌에 새기던 천부삼인을 구리거울에 새겨 세상을 떠나는 왕검이 새로 임명될 왕검에게 주었다.

그러나 조선이 멸망하면서 왕검이 없어지므로 천부삼인을 주어야 할 대상이 없어져 버리자, 천제를 지낼 때 왕검 곁에서 무당춤을 추었던 여자 무당이 천부삼인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당주무당이 ‘천부삼인’을 인계받으면서 이름을 명두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명두(明斗)란 해와 달과 북두칠성이라는 뜻이다. 삼성당에는 삼성을 신상으로 만들어 모셨는데, 신을 모시는 단의 가운데에 한인천제를 모시고 왼쪽에 한웅천왕을 모시고 오른 쪽에 단군왕검을 모셨다.

그러나 조선왕조 태종 때 하륜이 신상을 위패로 바꾸자고 건의하여 신상이 위패로 바뀌게 되었다. 유신들에게 삼성은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평양에 삼성사(三聖祠)를 다시 지었고 단군왕검의 위패만을 옮겨갔다. 그리고 한인천제와 한웅천왕의 위패를 모시지 않고 버리고, 고구려시조 고주몽과 고려태조 왕건의 위패를 바꾸어 모셨다.

이런 일이 있자, 삼성당이 있었던 황해도 문화현에는 전염병이 돌아 현에 살던 백성들이 모두 전염병에 걸려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조상들이 나라에 재앙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나라에서 문화현을 없애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성종실록’ 권15 성종 3년 2월 임신).

유교는 제사를 지낼 때 제사에 모실 조상을 4대의 조상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무교에서는 4대 조상을 뛰어 넘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모든 조상을 뜬 조상이라고 하여 굿을 할 때 불러들여 대접한다. 뜬 조상 대접을 소홀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신 내린 사람이 무당이 되는 내림굿을 할 때도 제일 먼저 허주굿을 하여 뜬 조상을 대접한다. 조상을 숭배하는 사상이 굿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허주란 뜬 조상이라는 말이다.

이 글은 무교가 우리 역사에서 나왔음을 밝힌 것이다. 요즈음은 일부 역사학자들이 무교에서 사라진 역사를 찾아야 한다는 논의를 한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사실이 그렇다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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