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비전론자였던 묵자는 방어전에서 싸우기 전에 절대로 지지 않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면 병력동원, 엄명한 군령, 원활한 보급 시스템 구축 등 고도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지휘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묵공’에서 4000여 명에 불과한 노약자로 조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이 과장일까? ‘묵자 비성문(備城門)’에서는 충분한 준비, 합리적인 배치, 합당한 전술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현대 군사전문가들은 전략상 상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약자 4000명으로 10만 대군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한 묵자는 확실히 상대를 무시한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큰소리를 치려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묵자는 전쟁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적과 아군의 상황을 분석해 전쟁이 벌어졌을 때의 유불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다. 미리 준비해 전쟁 도중 예상치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줄인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작전계획을 수립한다(未戰先謀)는 생각은 고대 중국의 병법가들에게는 전통이었다. ‘손자병법 시계편(時計篇)’에서는 그것을 ‘묘산(廟算)’이라고 했다.

“싸우기 전에 묘산을 하여 이기는 사람은 많은 것을 계산을 통해 얻었기 때문이다.”

군형편(軍形篇)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기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 후에 싸우려고 하고, 지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고 나중에 이길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작은 승패는 우연이나 임기응변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끼리의 전쟁에서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쪽이 이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 전쟁은 국가의 대사이므로 존망의 길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관자’에서는 그것을 칙(則), 상(象), 법(法), 화(化), 결새(決塞), 심술(心術), 계수(計數) 등 7가지 방법으로 정리했다. 묵자는 제자 금활리(禽滑釐)가 수비의 도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은 역사적 교훈을 일러주었다.

“옛날에 그 방법에 능통했다고 자부하던 사람은 안에서는 백성들과 친하지 않고, 바깥에서는 약속으로 다스리지 않으며, 적은 데도 많은 쪽의 화친을 거부했다. 약자가 강자를 무시하면 자신은 죽고 나라도 망하여 천하의 비웃음을 산다. 몸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문제는 자국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점이다. 오판은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내부가 안정되고, 외부가 고요하면 국가의 안위도 보장되므로 이보다 훌륭한 전쟁준비도 없는 셈이다. 유비무환은 고대 중국의 식자들에게 상식이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편안할 때 위태로울 수 있음을 잊지 않고, 생존해있을 때 망할 것을 잊지 않으며, 통치가 잘 이루어질 때 혼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묵자는 국방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7가지의 환란을 당한다고 했다. 첫째, 성곽과 해자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고 궁실을 치장하는 것. 둘째, 적이 국경을 침범해도 외교력이 부족하여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셋째, 노동력을 쓸모도 없는 일에 고갈시키는 것. 넷째, 관리는 사욕을 챙기고, 재야의 선비들은 파당을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 다섯째, 군주가 스스로 성스러움과 지혜를 갖추었다고 생각하여 신하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여섯째, 군주가 신임하는 자는 충성심이 없고,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군주가 신임하지 않는 것. 일곱째, 가축과 곡식은 먹기에 부족하고, 대신들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상을 내려도 기뻐하지 않고, 벌을 주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나라에 우환이 있으면 사직을 지킬 수 없고, 아무리 성을 쌓아도 적이 오면 나라는 망한다. 이상 7가지는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국방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대전략가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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