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명량(鳴梁). 명랑이 아니라 명량이다. 발음하기가 살짝 어려운 이 단어가 요즘 화제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여름 극장가를 후끈 달구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초반 구름 관중도 화제지만, 스토리의 울림도 만만찮다. “살아서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면 이길 수 있다” 등 영화 속 장군의 대사들이 가슴을 때린다. “천운은 물살이 아니라 백성들이었다”는 대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교롭게도 올 여름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다. ‘명량’에 이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개봉했고, ‘해무’도 13일 극장에 걸린다. 여름시장을 겨냥한 것들이라 이상할 것이 없지만, 세월호 참사 뒤여서 그런지 심경이 복잡해진다.

‘명량’은 세월호 참사로 상처 받은 국민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준다. 신하들마저 불가하다고 맞섰지만, “아직도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다”며 떨치고 나가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는 것이다. 믿을 만한 리더가 없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는 기대조차 하기 힘든 세상이라 그런지, 이순신 장군과 같은 영웅이 더욱 더 와 닿는다.

영화에서 충무공은, 승리한 것은 천운이었다고 했다. 울돌목의 회오리 물살이 천운이 아니라,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을힘을 다해 나서준 백성들이 천운이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은 백성을 버리고 피난을 갔지만, 백성들은 맨몸으로 맞서 싸웠다. 이 나라는 늘 백성들이 지켜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피난을 갔던 임금은 “임금을 몰라보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며 장군을 의심하고 고문하고 옥살이를 시켰다. 뭐가 부끄러운 줄 몰랐던 한심한 임금이었다. 간사한 상관과 간신배들은 끊임없이 무고하고 모함했다. 그럼에도 탓하지 않았고,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공은 부하에게, 잘못은 자신에 돌렸다. 임금에게 승전보를 올릴 때도 부하들의 공을 열거한 뒤, 마지막에 “신도 싸웠습니다” 하고 한 줄 썼을 뿐이었다.

일본에서는 저희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통일을 이룬 주인공으로 세 인물을 꼽는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들이다. 그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놈이다. 스스로 태양의 아들이라고 헛소리를 한 인간으로, 조선은 쉽게 먹을 줄 알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 때문이었다.

정유재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바람에 왜군들이 철수했다. 두 차례의 조선 침략은 왜놈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과 반성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쟁 대신 상업을 일으키고 해외 무역에 힘을 기울였다. 충무공에게 단단히 혼이 난 덕분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다. 지금 영웅이 그리워지는 것은, 난세이기 때문일까. 그는, “아직도 신에게는 열 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고 했다. 우리들에겐, 무엇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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