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지만 결연한 분위기…군인들 '치욕현장'서 집단서약
인민일보 "부패가 패전원인…갑오년 떠올리며 경종 울려야"

(베이징=연합뉴스) 7월25일은 중국의 수천 년 역사에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 청일전쟁(중국명 갑오전쟁)이 발발한 지 꼭 1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청나라는 이 전쟁에서 일본에 처절하게 패배하면서 사실상의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중국대륙은 열강에 분할 당했고, 일본에는 국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사건은 훗날 수많은 중국인의 인명을 빼앗아간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치욕'의 현장이었던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 류궁다오(劉公島)에서는 이날 북해함대 소속군인 400여 명이 도열해 묵념 등 기념의식을 거행했다. 이곳은 당시 일본군에 의해 전멸당한 청나라의 북양함대 본부가 있던 곳이다.

낮은 기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의장대가 영령 앞에 꽃바구니를 바치는 헌화의식을 거행했다.

특히 400여 명의 군인은 '갑오의 치욕을 가슴 속에 새기고, 강군의 꿈을 실천하자'는 글이 적힌 30m 길이의 현수막에 본인들 이름을 일일이 써넣었다.

그동안 복원작업이 진행돼온 북양해군 제독부 건물도 이날 개방됐다.

중국의 당·정·군 학계 인사 120명은 전날 오전 중국국가도서관에서 '갑오전쟁 120주년 연구토론회'를 열고 중국이 일본에 패배한 원인 등을 조명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과거사 문제와 영유권 갈등을 놓고 일본과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청일전쟁 120주년을 맞은 중국 내부의 결연한 분위기는 사설 등 관영언론들의 보도에서 직접적으로 포착됐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이날 '전쟁과 평화의 변증법을 가슴깊이 새겨넣자'라는 기사에서 청일전쟁으로 "두 동방국가의 관계가 역전되고 동북아질서는 '밀림의 질서'에 따라 리모델링됐다"며 "굴욕과 심령에 대한 고문은 절정에 달했고 뜨거운 피가 용솟음쳤다"고 말했다.

또 패전의 결과로 겪어야 했던 '굴욕'을 복기하며 "갑오년을 떠올리며 길고 긴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민일보는 또 다른 기사에서도 '왜 중국은 국토면적이나 인구규모에서 상대가 안 되는 국가에 패했는가'라고 자문한 뒤 "국운상실, 전쟁패배, 민족 위난의 배후에는 모두 청 말기의 부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 역사학자는 이날 신경보(新京報)에 기고한 글에서 "갑오전쟁 패배의 중요한 원인은 당시 정부와 학자들이 '피아형세'를 알지 못하고 전쟁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적을 모르면 필패"라고 주장했다.

신경보는 사설에서 일본은 한 번이라도 역사를 거울로 삼아본 적이 있느냐고 지적한 뒤 "일본군국주의자의 번식과 만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들어 '갑오년'을 두 차례 거론했던 점을 상기시키며 최고 지도부의 결연한 의지를 부각한 언론도 있었다.

경화시보(京華時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2월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 일행과의 회담에서 "올해는 갑오년이다. 120년 전의 갑오년에 중화민족의 국력이 허약해져 대만이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며 "이것은 중화민족역사에서 대단히 비참한 장면이었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동포들에게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을 남겼다"고 말했다.

또 지난 6월 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원사 대회에서 참석했을 때도 "올해는 갑오년이다. 갑오(년), 이것은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에게 아주 큰 함의가 있고, 우리 근대역사에서 특수한 함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경화시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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