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내년 G20정상회담의 한국 개최 성사를 계기로 이명박 대통령이 잇달아 ‘국격’을 거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국격을 언급한 것은 벌써 대여섯 차례나 된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이제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변방에서 벗어나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됐으니 G20 회의를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 기회로 삼자”는 것쯤 될 터이다.

이번에 G20정상회담을 한국에 유치한 것은 정말 축하할 만한 경사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국격을 높이자는 이 대통령의 취지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 같은 말의 성찬에 함께 박수를 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국제회의 개최 하나로 국격이 높아진다는 발상이 너무 저차원적이라는 게 그 첫째 이유다.

한국은 이미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등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행사를 유치했다. 2011년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대구에서 열린다. 또한 2000년 제3차 아시아ㆍ유럽 정상회의(ASEM), 2005년 제13차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올해 한ㆍ아세안(ASEAN) 특별정상회의 등 다자정상회의도 한국에서 개최했다. G20정상회의 유치가 국격 향상에 큰 전기가 된다면 과거 대규모 국제행사 개최 경력만으로도 이미 한국의 국격은 하늘처럼 높아졌어야 마땅하다.

다음으로는 국격을 재는 기준에 국제회의 유치 경력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국격이 높은 나라’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아마도 ‘선진국’이라는 단어가 가장 근접한 호칭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선진국의 범주에 대해 UN과 IMF 등 국제기구는 통상 1인당 GDP로 계량되는 경제지수와 인간개발지수(HDI)와 같은 복합적 지수를 적용해 분류한다. 또 간편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여부로 따지기도 한다. 한국은 2007년 이미 1인당 GDP 2만 달러를 넘어섰다. 또한 유엔개발계획(UNDP)이 각 국가의 실질국민소득, 교육수준, 문맹률, 평균수명 등 등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표를 조사해 각국의 인간 발전 정도와 선진화 정도를 평가한 지수인 HDI측면에서도 선진국 기준인 0.900점을 이미 넘어섰다. 한국은 2006년에 0.928로 25위를 기록했다. 또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보면 이미 한국은 국격이 높은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민주화 성숙도와 국제사회기여도도 선진국의 기준으로 자주 적용하는 추세다. 민주화 성숙도 중에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언론자유다. 그런데 20일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09년 세계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69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22단계나 추락한 것으로 탄자니아, 토고보다도 낮은 순위다. 국경없는 기자회 측은 “보수적인 정부가 비판적인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미네르바 등 블로거들과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을 구속한 것, ‘PD수첩’ 제작 PD들을 기소한 것 등이 순위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즉, 새 정부 들어 언론탄압이 거세졌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기여도를 재는 척도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즘 들어 가장 신뢰받는 것은 미국 싱크탱크 ‘세계개발센터(CDG)’의 ‘개발공헌지수(CDI)’다. 그런데 한국은 부유국을 주 대상으로 한 22개 조사국가 중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빈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인색하고, 개도국의 최대 수출품인 쌀 수입을 막고 있으며, 저개발국 노동자의 이주도 제한하고 있다는 게 주 이유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이웃을 도울 줄 모르는 신흥졸부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가장 흔히 사용되는 UN 정부개발원조(ODA) 규모에서도 OECD국가의 20%에도 못 미치는 국민총소득 대비 0.07%(2007년)에 불과하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우를 받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겉치레 국격 향상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내실있게 바로 세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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