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성스님 탄생 150주년을 맞아 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천지일보=이길상 객원기자]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대표인 용성스님 탄생 150주년을 맞아 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은 용성스님의 독립정신을 선양하고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함으로써 오늘의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나누는 계기로 삼고자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사)독립운동가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죽림정사(백용성조사 탄생성지)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독립운동가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법륜스님(정토회 지도법사)은 인사말에서 “용성스님은 수행자로서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도 불교의 대중화·생활화를 펼쳐 가셨고 시대의 과제에 눈을 뜨시고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셨다”며 “이 분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수행 정진하며 자비실천 활동을 해 나갈 것인가에 관한 많은 교훈을 주고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허우성 경희대학교 교수가 ‘자아완성과 구세는 둘이 아니다: 용성의 대각사상’을, 김순석 한국국학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시대정신, 독립운동’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허우성 교수는 “용성‧만해‧성철스님은 개혁적이었지만 그들이 품었던 불교이념은 서로 달랐다”며 “성철이 청정한 수행공간을 마련하고 견성성불의 표준을 제시한 일은 엘리트 출가자의 양성이지만 나름대로 ‘구세’ 욕구의 표출이었다. 하지만 성철의 구세 범위는 수행론이 엄격했던 것만큼 협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용성스님의 구세 범위는 성철스님의 것보다 넓었으며 자비와 사회적 깨달음에서 우러나는 구세 욕구는 자아완성의 욕구만큼이나 치열했다”며 “용성스님에게 자아완성과 구제는 둘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순석 수석연구위원은 “스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으로 알고 묵묵히 한 길을 걷다간 위대한 고승이었다”며 “지도자의 솔선수범이 그리워지는 오늘 용성스님의 행적은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요,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하는 나침판”이라고 역설했다.

용성스님은 1864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으며 16세 되던 1879년 출가했다. 스님은 1940년 세수 77세, 법랍 62세로 열반했다.

용성스님은 불교가 오직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종교임을 역설하며 수행기풍을 확고히 하고 청정계율을 정립했다.

용성스님은 불교가 대중과 유리돼 있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대중이 우리의 얼이 담긴 글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하는 한편 도심포교를 전개하고 선농불교를 실천하는 등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를 몸소 실천했다.

또한 용성스님은 민족대표 33인을 결속시켜 3.1 만세운동이 성공하도록 힘쓴 독립운동가였다. 스님은 선농당과 화과원에서 나온 수익금을 꾸준히 독립운동자금으로 지원했다.

한편 독립운동가백용성조사기념사업회(이사장 법륜스님)는 다음 달 5일 오전 10시 전북 장수 죽림정사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백용성스님 탄생 150주년 기념식을 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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