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춘향전’의 하이라이트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변신, 탐관오리 변학도 사또를 때려잡는 장면이다. 변 사또는 이몽룡의 애인 춘향에게 수청 들 것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자 모질게 고문하고 옥살이를 시킨다. 수청 들지 않은 죄가 얼마나 컸던지 춘향이는 귀신처럼 산발한 채 목에 칼을 차고 고통을 받는다. 그럼에도 이몽룡을 향한 일편단심은 꺾이지 않는다. 변 사또에 대한 증오와 춘향에 대한 연민으로 관객들이 가슴을 쥐어짤 때, “암행어사 출두야” 하는 소리와 함께 군졸들이 들이닥쳐 와장창 우지끈 잔칫상을 뒤집어엎고 변 사또는 혼비백산한다.

만약 이 도령이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면 춘향이의 지조도 별 볼일 없었을 것이다. 이몽룡이 과거에 붙지 못하고 춘향이 영악했더라면 춘향이 먼저 차버렸을 수도 있었다. 이몽룡이 과거에 합격하는 바람에 춘향이 팔자도 고치고 사랑도 이룰 수 있었다. 비록 기생의 딸로 태어났으나 과거 급제한 이 도령 덕에 평생 마님 소리 들어가며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이다.

이 도령처럼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하면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과거를 통해 벼슬을 얻으면 평생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글 읽는 선비라면 누구나 죽기 살기로 과거에 매달렸다. 하지만 천민이나 상민들은 과거 볼 자격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과거는 그야말로 양반 그들만의 리그였다. 문과는 양반들만 응시할 있었고 기술직인 잡과 증시자격은 중인들에게만 주어졌다.

과거는 중국 한나라 때 생긴 인재 등용 제도로 당과 송을 거치면서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 독서삼품과라 하여 과거가 선을 보였지만 귀족만 응시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지지부진하다가 사라져버렸다. 고려 4대 임금 광종이 문과와 잡과로 나누어 과서를 실시했는데, 이때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문과는 양반들만 볼 수 있었다. 고려의 과거제도는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에서 인재를 뽑아 서울의 성균관에서 3년간 연수를 쌓아 정식 문과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지역예선 격인 생원, 진사에만 붙어도 어깨를 펴고 거들먹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는 뒷거래가 이뤄지고 부정이 횡행하면서 원래의 취지와 기능을 잃어갔다. 족벌과 문벌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을 일삼았고, 순진하고 정직한 선비들은 초야에 묻히고 탐욕스러운 자들만이 득세했다. 홍경래는 과거에 응시했다가 부정하게 낙방했다며 앙심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

말 많고 탈 많던 과거제도는 19세기 말 갑오개혁 때 영영 없어지고 말았다. 지금의 고시제도는 일제가 과거 대신 시행한 인재등용 제도다. 일본에서도 고시제도가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우리나라에서만은 질기게 이어져왔다. 이번에 고시 제도를 손질하고 최종적으로는 고시제도를 없앨 계획이라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 인재를 등용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제도도 사람이 운용하기 탓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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