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물에 잠긴 날, 마가 낀 그 날로부터 진도 앞바다에서 전해져 오는 비운의 소식에 마음 상하지 않은 국민이 없는 형편이다. 분노와 슬픔이 우리를 거대한 해일, 쓰나미(Tsnami)처럼 우리를 집어 삼켰다. 일반 국민의 마음이 이러할진대 자식과 부모 형제를 잃은 유족 당사자들의 심경은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들의 심경이 어떨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꺼내는 것조차 차마 못할 노릇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 사고 현장에서 만난 유족과의 대화에서 “가족을 잃어본 사람이 유족들의 미어지는 슬픔을 가장 잘 이해한다”며 그들을 위로하려 애썼다. 그러고 보니 그 역시 과거에 양친 모두와 불행한 생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다. 바로 유족들이 지금 당장 겪는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세월호 사고에 대한 통절한 책임감, 유족들에 대한 미안함, 그들의 슬픔에 대한 연민과 그에 대한 번민이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꼭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서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생이별을 경험한 입장이기에 인간적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다.

이런 저런 정황을 통해 관측하건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하늘이 무너지는 지금 심경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대통령 자신이 아닌가 싶다. 많은 국민들이 비록 말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그를 지켜만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를 눈여겨보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것이 있다. 그는 이미 참담한 심정으로 진도 사고 현장을 두 번이나 방문했으며 사과는 입을 열 기회만 있으면 무겁게 이어간다. 철의 여인이라는 그지만 유족들과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가슴앓이를 하는 그 모습은 애처로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진정성을 향해 쏟아지는 분별없어 보이는 원성과 적개심, 결코 선하게 보이지 않는 돌팔매질이 대통령과 유족,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갈라놓고 갈등과 불화를 조성해 놓으려 기승을 부린다. 이는 분명 사태의 수습을 도우려는 데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적개심을 확산시켜 사태를 정치 투쟁에 이용하기 위한 선동의 냄새가 진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대통령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게 파묻히거나 전달이 차단돼버리지는 않는 것 같다. 도리어 슬픔과 분노를 애써 가누면서 상황과는 너무나도 엉뚱한 그들의 ‘기도(企圖)’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국민이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국민은 그들의 사악한 속내에 더는 끌려 다니며 시달리지 않을 만큼 충분한 학습을 쌓아온 것이 틀림없다. 그들 스스로도 그들이 목소리를 높이거나 준동을 꾀할 때 국민의 집단 이성과 사리 판단의 균형추가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 방향에 무게 중심이 더 많이 실리게 된다는 것을 이제는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말로서야 이들만큼 더 잘 유족과 국민의 슬픔과 분노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그들은 유족과 국민의 슬픔과 분노의 거친 파도 위에서 뭔가 그들의 의도를 달성하기 위한 현란하고 숙달된 ‘저주의 서핑(Surfing) 놀이’ ‘선동의 군무(群舞)’를 즐겨왔다. 그것으로 손님을 끌려했다. 혹여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촛불로 가득 메워 누군가를 겁박했던 광우병 촛불 시위의 향수를 떠올리면서 그것의 재현을 기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급기야는 대통령더러 하야하라는 돌출 발언이 나왔다. 그것도 결코 선동 당할 사람이 아닌 내노라 하는 어떤 천재 석학의 입을 통해 나옴으로써 여간 그를 사랑하고 아끼던 많은 국민들을 의아스럽게 하고 실망스럽게 한 것이 아니다.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그의 이 발언은 ‘꾼’들의 파도타기 군무 놀이에 꼭짓점을 찍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되묻고 싶은 것은 그의 그 같은 발언이 진정으로 그의 출중한 지성과 인품, 양심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렇다’는 대답이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렇다’는 대답은 지금 상황과 환경에 비추어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책임을 관용(寬容)하려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볼 때 세월호 사고는 누대(屢代)의 정권을 거치면서 누적된 해운 행정과 관련된 관민(官民)의 도덕적 해이와 유착, 업무 태만이 불러온 사고다. 어느 정부가 그 같은 사고로 타격을 받을지는 마치 무모한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게임이 만들어내는 불운한 희생자의 경우와 같다. 그렇다면 사고는 박근혜정부 훨씬 이전에도 그 정부 후에도 아무 때나 터질 수 있었다. 따라서 어느 석학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변의 전 과정을 총괄했기 때문에 하야해야한다’는 논지는 참으로 그의 지성적 통찰을 의심케 하는 턱없는 말임이 자명해진다.

그렇더라도 불운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책임의 총대를 멜 수밖에 없다. 책임자 처벌과 인적 쇄신을 포함한 확실한 사고 수습과 사고 재발 방치대책, 효율적인 재난 시스템의 구축, 진솔하고 정중한 사과로 그 책임을 마무리 짓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역대 정권을 거쳐 지금은 박근혜정부 시대를 사는 이 사회 지도자 아무도 까마귀 떼 속에 있는 순백(純白)의 백조일 수는 없다.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한 석학이나 국정의 동반자인 여야 국회의원이나 관료나 필자를 포함한 언론인이나 세월호 사고를 유발한 적폐를 막는 데 무엇을 기여했는지 먼저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옳다. 대통령을 향해 적개심만을 드러내거나 돌멩이를 던지는 것은 자기를 기만하는 일이기 쉬우며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 정부를 돕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충정이면 충정이지 결코 비겁한 일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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