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신라 선덕여왕은 당 태종이 보내 온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꽃에 향기가 없는 게 틀림없다고 했다. 그림과 함께 보내 준 모란의 씨앗을 심어 보니 과연 꽃에 향기가 없었다. 이로써 선덕여왕이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고 사람들이 여기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선덕여왕이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몰라 그림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중국 사람들은 음이 같은 글자를 이용해 원하는 바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전통이 있다. 그림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담고 싶은 내용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부터 궁중이나 양반가는 물론 일반 여염집에서까지 박쥐문양을 많이 이용했다. 이것 역시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다. 박쥐를 한자로 편복(蝙蝠)이라 하고, 여기서 복(蝠)이라는 글자와 복을 뜻하는 글자 복(福)은 중국어로는 ‘푸’로 같은 소리가 난다. 그래서 박쥐를 복을 불러 오는 귀한 동물로 여겨 장식 문양으로 썼던 것이다.

술병 물병 하는 병(甁)도 중국어로 평안하다는 의미의 평(平)과 같은 소리 ‘핑’이 된다. 때문에 그림에 병을 그려 넣으면 평안을 기원한다는 뜻이다.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와 노인 모(耄)도 중국식 발음으로 하면 ‘마오’로 똑같다. 그래서 고양이 그림은 장수를 바란다는 뜻이 담기게 된다. 나비 접(蝶)과 노인 질(耋)도 중국어로 ‘디에’로 발음이 같다. 나비 그림도 장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비와 고양이가 함께 들어간 그림은 장수를 의미하지만, 나비만 따로 그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비(접, 蝶)와 발음이 같은 노인(질, 耋)은 60~80세의 노인을 이르는 말이고, 고양이(묘, 猫)와 발음이 같은 노인(모, 耄)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80~90세 노인을 일컫는다. 그래서 이왕이면 더 오래 살라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비보다는 고양이를 그리는 것이다. 모란을 그릴 때도 모란과 나비만 그리지 않고 고양이와 함께 그리거나 모란과 고양이만 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이런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그림 속 모란꽃이 향기가 없다고 한 것이다. 심지어 당 태종이 독신인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그 그림을 보냈다고 여겼다. 꽃은 여성을 상징하고 나비는 남자를 의미하는 것이니 꽃만 있고 나비가 없는 그림은 미혼인 자신의 처지를 조롱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선덕여왕은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고구려 백제와 겨루고 있는 상황이라 당나라의 도움이 절실했던 때이긴 했지만, 한 나라 왕으로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 태종은 선덕여왕을 몰아내기 위해 반란을 사주하는 등 신라와 선덕여왕을 우습게 알았다.

선덕여왕은 그런 당 태종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림 감상법을 무시하고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모란꽃 이야기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서 고단한 정치 현실을 헤쳐 나가야 했던 그녀의 답답한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올해도 모란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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