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문화에도 반듯한 목적성이 있어야

2002년 6월 세계를 빨갛게 물들였던 한·일 월드컵 ‘붉은 악마’ 젊은이들은 한국 축구가 위기를 맞이한 순간에도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으로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며 한국콘텐츠 문화의 변화를 이끌었다.

비단 이뿐이겠는가.

광주학생 독립운동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인 나라를 구한 젊은 청년들의 열정과 애국심이 묻어있다.

힘없는 육체에서 나오는 젊은 열정이 4,000만 국민의 힘을 모으는 원천이 된 것을 보면 대한민국은 젊은 피로 일궈진 나라인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젊음의 열정이 단순한 것이 아닌 나라를 바로 서게 한 문화 창조의 원천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 또한 120년 역사에 젊음의 열정이 신앙과 함께 접목되어 한국교회 부흥을 일으켜왔다.

현재 청년들의 찬양문화는 그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예배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찬양에 열광하고 외치는 예배문화의 분위기는 실로 뜨겁다.

그러나 이 뜨거운 열정의 중심이 하나님을 위한 예배인지, 젊음의 열정을 표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인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

청년들이 예배시간보다 찬양집회에 열광하는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즉, 교회안의 예배에는 더 이상 가질게 없다는 위험한 판단으로 교회를 등지고 새로운 기대감에 낯선 집회현장을 찾아가는데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청년들에게 예배의 목적성이 결여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독교 세계에 급속히 전파된 청년 찬양문화에도 반듯한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거대해진 시설과 찬양의 분위기에 들떠서 보내고 나면 겉만 충실한 속빈 강정과 다를 바 없다. 음악이 말씀보다 더 비중을 차지하고, 하나님께 경외함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그치게 될까 염려가 된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어떠할까. 찬양을 하며 뜨겁게 부르짖는 신앙의 중심엔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올바른 믿음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뜨거운 열정의 원천이 말씀이 되어 창조해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는 문화일 것이다.

양분을 흡수해서 뿌리를 내린 나무가 잘 자라듯 지금의 청년문화가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바로서야 할 때다.

귀에 듣기 좋은 음악과 볼거리에 치중되고 그것을 즐기는 것에 그친다면 세상의 축제와 다를 바 없다.

세상문화를 넘어 하나님 문화가 반듯하게 세워지기 위해선 진리 없이 허공에 울리는 꽹과리가 아닌 하나님의 참뜻을 알고 입술로 고백하는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이다.

찬양의 향기를 찾아야...


‘Reveal Him 찬양 콘서트’의 열기는 그야말로 용광로였다. 그 젊음의 열기 속에 중년의 나이도 녹아 들어갔다.
7시간 동안 20여개의 찬양팀이 릴레이로 공연한 경우는 한국 CCM 역사상 처음 있는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부산시장이 직접 참관할 정도의 공연임을 볼 때 그 공연의 의미는 평범 그 이상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를 드러내라(Reveal Him)’는 주제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공연 내내 진행되는 힘찬 안무와 강한 퍼커션(드럼)연주는 역동적인 무대를 만들어 냈다.

관객의 대부분은 마치 메마른 땅이 단비를 맞이하듯 전주가 흘러나오자 기립했고 이어지는 음악에 맞추어 두 손을 들고 뛰며 열정을 불태웠다. 이 열정 속에서 그들의 영적 갈급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들은 메말라 있었을까?

그들이 영적 갈급함을 찬양을 통해 표출하는 것은 한국 교회가 젊은층의 영적필요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공연 후 한 워쉽팀 리더는 “세상문화에 길들여진 청년들이 교회의 예배문화에 적응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집회가 젊은 세대의 예배문화에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행사를 주관했던 강형식 목사(문화쉼터대표, 예인교회담임)는 이러한 행사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예배문화와 기독교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콘서트의 열기는 깊은 밤과 함께 식어갔다.

참가자들은 일상의 삶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광로같이 뜨거웠던 광장은 텅 비어있다.

바로 그 현장에서 뜨겁게 찬양했던 사람을 만났다.

남성교회를 섬긴다는 한 형제는 “열정적인 찬양사역을 보면서 은혜로웠다”며 “부족한 찬양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반면 “요즘 찬양은 사람의 감정을 많이 건드린다”며 “은혜 받은 것 같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텅 빈 공허함을 느낀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모두 성령이 충만한 공연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어느 집회든 수많은 군중은 성령체험, 은혜체험을 고백한다. 막상 돌아가면 그 감동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바쁜 일상으로의 초대 앞에 대부분은 그 감동과 기쁨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메마른 땅이 되어 단비를 기다린다.

성령의 체험은 넘치는데 성령의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성령의 열매는 시즌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집회나 공연쯤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대적 요구 앞에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 움직임이 일어나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 ‘집회 증후군’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집회공연장에선 열광하다가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면 허무감이 찾아오는 현상.

그래서 또 다른 강력한 공연을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경험하면 삶 속에서 열매가 있어야 한다.

다수는 열매 없는 은혜체험, 성령체험의 고백들이다.

성령의 지배력이 상실된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회복할 영적 부흥세대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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