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4일 오후 2시 옥외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와 벌칙을 규정한 23조 1호에 대해 5(위헌)대 2(헌법불합치)대 2(합헌)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조항을 2010년 6월 30일까지 국회가 개정토록 했으며 개정 전까지는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만일 이때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현행 집시법 10조는 ‘누구든 해 뜨기 전이나 해진 후에는 옥외집회를 해서는 안 되며 다만 미리 신고한 경우에 관할경찰관서장은 조건을 붙여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헌 의견을 낸 이강국·이공헌·조대현·김종대·송두환 재판관은 이 조항들이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21조 2항을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밝혔다.

민형기·목영준 재판관은 “헌법상 금지되는 사전허가제는 아니지만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고 정한 시간제한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이와는 달리 김희옥·이동흡 재판관은 “집회 및 시위의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의 조화라는 입법 목적 하에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은 정당하다”며 합헌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야간집회 금지 조항 위반을 이유로 기소된 촛불시위 참여자들의 처리문제가 긴급현안으로 대두됐다. 현재 야간 옥외집회 금지규정 단독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은 총 35명이고 수사 중에 있는 사람은 8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일반교통방해 혐의 등과 병합된 사건을 합치면 약 1천여 명이 관여된 것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국회는 한동안 현행 집시법을 개정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시위 자체가 달갑지 않은 한나라당이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이 같은 관측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만 ‘위헌’ 결정이 아닌 이상 발 빠른 개정작업이 이뤄져 야간 옥외집회를 일정부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입나온’ 법조계 “우려스럽다” vs “뭔가 부족하다”

이번 결정이 나온 뒤 법조계의 의견은 ‘우려스럽다’와 ‘뭔가 부족하다’로 갈렸다.

이재교(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이론적으로는 헌재의 결정이 맞지만, 대낮에도 극렬시위가 난무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야간집회를 허용하는 것은 사회불안을 초래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우려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밤에는 낮보다 익명성의 폐해가 심해지기 때문에 군중심리로 인한 일탈의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시위 문화가 조금 더 성숙하고 평화적으로 정착된 후라면 야간에도 집회를 허용하는 입법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도 “평화적인 집회는 당연히 보호돼야 할 것이나, 집회 및 시위를 통해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폭력세력으로부터 건전하고 평화적인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야간옥외 집회금지 규정은 필요하다”며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그대로 수긍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시변은 그러나 “헌재의 사법적 판단인 만큼 결정은 존중돼야 할 것이고, 무의미한 논란과 공방을 멈춰야 할 것”이라고 밝힌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시법 10조의 규범력과 실효성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이 집회의 자유가 다른 기본권에 앞서는 절대적인 권리라고 하거나, 도심지 도로를 무단점거하고 행진하는 것도 무제한적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짚었다.

반면에 당초 위헌결정을 바랐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위헌결정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의 형식을 취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은 “야간에는 일체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집시법 10조, 야간집회금지조항은 세계 어느 나라의 입법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과잉 집회규제 입법이어서 일찍부터 위헌법률조항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다”며 “정부의 행정편의적 주장에 대한 정치적 고려로 위헌결정을 하지 않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민변은 특히 “현대인들은 주간에 생업과 학업에 몰두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주간 집회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집회가 저녁시간대에 개최돼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변은 일단 결정된 이상 경찰과 법원이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잘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승환(한국헌법학회 회장, 전북대)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야간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입법례는 많지 않다. 영국·독일·일본·오스트리아 등은 금지하지 않고 있고, 프랑스는 밤 11시 이후의 집회만 금지하고 있다”면서 “우리 집시법은 모든 야간집회를 금지하고 있고 이 점이 헌법불합치 결정에 영향을 미친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헌법불합치 결정의 효력과 관련하여 당해사건(위헌제청된 사건)과 병행사건(위헌제청되지는 않았지만 같은 법률조항이 적용돼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는 해당 법률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례를 만들어 놓고 있다”며 “결론적으로 이번 결정으로 인해 법원·검찰·경찰의 혼란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검·경 ‘개정안 추진’, 법원은 ‘갈팡질팡’

헌재 결정이 나온 직후 한 경찰서 관계자는 “야간 옥외집회는 밤에 열리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공익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특히 집회 장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호소가 끊이질 않고 있다. 자신의 기본권을 요구하며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발생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경찰청 역시 야간 옥외집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을 우려해 “각계 여론을 수렴해서 집시법 관련조항 개정작업을 가능한 빨리 추진하겠다”면서도 “관련 법조항은 개정이 될 때까지는 유효한 것인 만큼 개정 때까지 현행법을 준수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구체적인 시간대를 정해 야간 집회의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논의될 것으로 점쳐지는 시간대는 ‘일몰 후부터 자정까지’로, 범죄 발생률이 높은 새벽시간을 피하기 때문에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집시법이 유독 많은 잡음을 일으켰던 전력을 고려하면, 경찰이 개정안을 통해 다른 단체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시원한 안타를 때려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법원은 법원대로 뾰족한 수를 찾느라 고심 중이다.

헌재에서 불합치결정을 받기는 했지만 내년 6월까지는 법률로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연기할 것인지, 진행할 것인지를 두고 혼선을 빚고 있다.

일각에서는 ‘즉시중지’가 아닌 ‘잠정적용’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일단 법원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다. 첫째는 내년 6월까지는 효력이 인정되는 이상 현행법대로 선고를 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항소 등을 제기하게 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판결을 내리되 ‘헌법불합치 결정이 위헌 결정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는 의미를 새겨 무죄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이 외에 법 개정 전에는 선고를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다만 다른 혐의가 겹친 병행사건의 경우에는 다소 논의가 복잡해질 수 있으며, 판사들은 조만간 모임을 통해 향후 대응책을 강구해 나갈 방침이다.

※헌법불합치 결정
해당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지만, 위헌 결정에 따른 ‘법적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일정기간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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