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여야 원내지도부가 25일, 국정원 개혁안과 새해 예산안 등 쟁점 현안에 대해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오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동시에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날짜만 못 박았지 알맹이가 없다. 무엇을 처리한다는 것인지 내용이 빠진 것이다. 어떻게 이런 합의가 가능한지 정말 낯설다. 그저 단순한 크리스마스 선물용이라면 쇼하는 것이고, 내용이 없는 데도 날짜만 합의하는 것은 대충이라도 처리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 정말 왜 이러나

국정원 개혁이 정치권의 화두가 됐을 때 민주당은 땡볕에 천막을 치고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당시만 해도 국정원 개혁의 수준은 고강도 개혁이었다.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는 물론이고 국내파트도 없애서 아예 ‘통일해외정보원’으로 탈바꿈 시킨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 때 국정원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고 있는 국민은 큰 박수를 보냈다. 서울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박수를 보낸 것도 국정원 개혁의 절박함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안에 대한 최근의 내용을 보면 초라해도 너무 초라하다. 물론 아직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볼 일이지만,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민주당이 후퇴하는 모습은 역력하다. 대공수사권 폐지나 국내파트 폐지 등은 언감생심이다. 국정원 정보관(IO)의 정부기관 상시출입 문제도 별 진전이 없다. 이달 초 여야 지도부의 ‘4자회담’에서 합의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처리 시한부터 덥석 손을 잡아 준 것이다. 이것을 협상이라고 했는지 보기에도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른바 ‘양특’ 가운데 하나인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 문제는 이렇다 할 내용조차 없다. 지난 3일의 ‘4자회담’에서는 “특검 시기와 범위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김한길 대표가 직을 걸겠다고 했던 최대 쟁점 현안이다. 그럼에도 특검 문제에 대한 어떤 결론도 없이 국정원 개혁안과 새해 예산안 처리의 시한에 합의해 준 진짜 배경이 궁금하다. 특검 문제는 질질 끌고 가겠다는 얄팍한 전략인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 성탄절 선물용으로 쇼를 한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현실적인 협상력의 한계를 자인한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혹시 오해하지 마시라. 민주당의 이번 처리시한 협상 결과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악담은 더더욱 아니다. 모름지기 야당을 대표한다면 논리와 실천에 일관된 전략과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야당 입장에서 협상에 임할 때는 그 동력을 ‘국민(지지층)의 신뢰’에서 찾아야 한다. 간단하게 물어보자. 민주당, 지금 무슨 성과를 손에 넣었는가. 이런 식으로 국민의 지지를 다시 호소할 것인가. 국민인들 이런 민주당을 신뢰하겠는가. 직을 걸겠다던 김한길 대표만 괜히 오버한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여론이 많다. 새누리당의 무기력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을 보자. 아무리 불통하고 존재감조차 없이 무기력해도 정부와 여당은 민주당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엄연한 현실 앞에 민주당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아무리 망해도 제1야당의 지위만큼은 지키겠다는 계산일까. 그런대로 잘 버티다가 차기 총선에서 다시 국회에 들어가려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새누리당보다 안철수 신당이 망하는 것을 더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젠 국민이 나서서 그들을 끌어 내릴 것이다. 이럴 거면 아예 지금 그만 두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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