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다음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수백억 원 과징금’이라는 몽둥이를 피했다. 그들이 꺼내 든 무기는 ‘선(先) 개선, 후(後) 처벌’이라는 ‘자진 시정방안’이라는 카드다. 잘못한 것을 먼저 시정할테니 우선 개선을 지켜본 후 처벌을 하든 정하자는 것. 공정위는 이 같은 네이버와 다음의 동의의결제도 신청을 수용하기로 했다.

동의의결제는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등 제재를 가하는 대신 불공정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소비자 피해구제나 경쟁제한 상태 해소 등의 시정방안을 제시하고, 규제 기관이 이를 인정할 경우 위법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2011년 11월 국내에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이를 직접 이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던 두 포털사가 이런 방법을 제시한 것을 놓고 공정위가 ‘면죄부’를 허락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공정위가 내놓은 ‘구글의 행위에 대한 해외 경쟁당국의 법집행 동향’ 보고서에 이번 ‘자신 시정방안’ 사례가 소개됐기 때문이다. 2007년 구글이 이를 이용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처벌을 피한 사례만 다뤘을 뿐 이후 다른 불법 행위 때문에 처벌을 받았던 사례는 빠져있었다. 마치 국내 포털사들에게 과징금을 피해 가는 묘책을 알려주는 비법서처럼 말이다.

면죄부라 했을 때, 이들이 정말 면죄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가에 대한 논란도 확산하고 있다. 동의의결제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IT 분야에 불법행위가 발생했을 때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십년 넘게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자행한 네이버와 다음에 그간의 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 없이 사업자의 제안만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지적이다.

공정위도 사업자도 공정거래법이 누구를 위해 먼저 존재해야 하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과징금이든 자진 시정방안이든 공룡 사업자들의 불공정거래로 피해를 입은 ‘힘없는 자’들을 먼저 ‘구제’해 시장이 바르게 흘러가게 해야 한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이현령비현령’식으로 제도를 이용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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