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 ‘이효리-이상순’ 커플은 부창부수(夫唱婦隨). 음악이 매개가 된 커플이다. 신랑이 기타를 치며 선창하면 에스라인 허리로 신랑에게 기댄 신부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들은 지금 음악처럼 감미롭고 아름다운 신혼생활에 푹 빠져 있다. 유럽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애월 바닷바람에 동화되고 한라산 숲 내음에 흠뻑 취하며 행복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최근 교통사고를 당한 유기견을 병원으로 옯겨 수술 등 치료를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유명인이라면 특급호텔 호화결혼식을 외면하기 힘들 수도 있을 텐데 이들은 제주도에서 비교적 조용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9월에 있은 결혼식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비밀결혼식’이라는 말을 쓰며 눈총을 주었다. 이는 아마도 연예 담당 기자들의 볼멘소리인지도 모른다. 즉 유명인의 사생활을 정밀 취재해 시원스레 공개하는 특종에 실패한 데 따른 ‘조어(造語)’일 듯하다. 아무튼 이 커플은 가까운 가족 친지들만 모여 조용히 혼사를 치른 탓에 결혼식 내용이 직접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자연친화적이고 마음 여유로운 한 장의 흑백 사진 같은 결혼식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유명 호텔에서 대규모 하객을 초청해 놓고 벌인 화려한 ‘굿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긴 하다. 

# 연말연시가 임박하면서 전국의 웨딩홀들이 붐빈다. 해 넘겨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서둘러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 하는 커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우리가 언제부터  웨딩홀에서 결혼하고 언제부터 특급 호텔에서 결혼했는가. 원래 우리나라 전통은 신부 집에서 먼저 혼례를 치르는 게 보통이었다. 동옥저의 민며느리제도가 그렇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도 대체로 그랬다. 그래서 신부가 친정을 떠나 시댁으로 신행(新行)한 뒤에 행해지는 것이 폐백. 신부는 미리 친정에서 준비해온 대추 밤 술 안주 등을 상 위에 올려놓고 시부모와 시댁 어른에게 큰 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웨딩홀에서 신부 측 부모가 사돈과 함께 앉아 절을 받는 것은 시대의 변천상이 반영된 것이겠지만 심하게 말해 역사의 왜곡이다. 하긴 폐백이라는 의례가 의미 없다며 생략하는 곳도 많아진 것 같다. 한복값이며 음식값이며 폐백만 줄여도 비용은 훨씬 적게 든다. 그러나 폐백만이 문제가 아니라 결혼식 전체가 다 돈잔치다. 일생에 한 번뿐이라며 남 앞에 없는 체면 살리고 자랑하기 위해 화려한 결혼식을 치른다면, 그 후 혹시라도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웨딩 푸어’가 되고 만다면?

요즘 들어 소박하면서도 의미 있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작은 결혼식’ 공간도 차츰 인기를 높이고 있다. 일부 학교와 문화재가 허가 절차를 거쳐 결혼식장으로 시설을 개방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대관료 5만 7천 원) 서울시청(대관료 6만 6천 원) 등도 결혼식을 치를 수 있다. 식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전국에 130여 곳이나 되고 관심만 가지면 구민회관 문화회관 마을회관도 널려 있다. 뿐만 아니라 야외엔 아름다운 강변이며 추억의 풀밭도 많다. 그런데도 꼭 웨딩홀에서 식을 올려야 하겠다고 현금 싸들고도 식장을 못 구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커플들이 많기만 하니 안타깝다.

# 일요일 낮, 불러내는 결혼식은 고민거리다. ‘출석 통지서(?)’ 같은 청첩장도 혼주와 어느 정도 친한 사이여서 날아왔다고는 해야 하겠다. 언젠가는 스스로도 자식 결혼 시켜야 하는 데 빠트리자니 그렇고 참석하자니 하루가 다 소비돼 천금 같은 시간이 아쉽다. 일에 지쳐 모처럼 푹 쉬고 싶은 휴일, 걸어가는 몸은 무겁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장 두어 군데를 돌고 나면 지갑도 텅텅 빈다. 돌잔치나 백일잔치에도 관례라고 순금이라도 한 돈 해서 갖고 가려면 솔직히 경비가 부담스럽다. 절 받으면 절값도 공식 부조금과 별도로 또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멀쩡한 아파트를 ‘나홀로 아파트’라고 폄하해 부른다. 대형 건설회사가 지은 대단지 아파트는 시장도 상가도 멀어 불편하다. 주차장도 공기 좋은 지상이 아닌 숨 턱턱 막히는 지하에 있는 데도 인기다. 크고 높아야 하고 대세를 따라야 산단다. 인간성이나 실력보다는 스펙이고 학벌이고 외모다. 결혼식이건, 장례식이건, 돌잔치건, 생일잔치건 무슨 화환이 그리 많이 와야 잘 사는 인생인지, 또 하객은 수천 명쯤은 동원돼야 ‘본전 장사’가 되는 것인지. 결혼식 평균 비용이 5천만 원을 넘고 있단다. 많게는 수억 원, 그 비용이 무려 1백 배 이상 차이가 나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현실이다. 식사비만 해도 최고 13만 4천 원인 특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치르면 기둥뿌리 하나 뽑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데도 그 기둥뿌리 하나를 뽑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장례문화도 엄청난 낭비와 허례허식이 도를 넘는다. 관을 옥으로, 관 뚜껑은 금장식에, 수의는 금수의를 입히며 수억 원의 장례비를 들이는 이들도 있다는데 효도는 살아생전에나 마음 편히 잘 모셔야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가 아닐까. 보여주기식 행사가 언제까지 대세가 될 것인지, 거품을 뺄 수 없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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