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민 수녀(씨튼연구원 원장)

1. 씨튼연구원의 설립 역사

한국의 다종교문화 속에서 종교 간의 대화의 필요성에 응답해 1994년에 설립된 씨튼연구원이 올해로 설립 스무 돌을 맞았다. 씨튼연구원의 설립은 1991년 10월 네덜란드의 한 베네볼렌시아(Benevolentia, 후에 포티쿠스(Porticus)로 재단 이름을 변경) 문화재단의 관계자 두 명이 방한해 한국 내 종교 간 대화프로그램 실시를 권유받으면서 시작됐다. 그 후 1993년 11월 동아시아 종교연구소 연합체 형성에 지도적 역할을 한 일본 난잔(南山) 대학교 종교문화연구소의 소개로 포티쿠스에서 종교대화 사업을 위해 십여 년간의 재정적 후원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 내의 영향력 있는 종교 중심으로 해서 각 종교를 학문적으로는 물론 신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학자들 간의 정기적인 교류와 대화를 위해 소규모 모임을 구상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유교, 원불교 등의 학자들로 구성된 이 종교인 모임은 1993년 11월 김승혜 수녀(서강대 명예교수), 길희성 교수(서강대 명예교수), 최근덕 교수(전 성균관 관장), 서종범스님(전 중앙승가대 총장)의 만남으로 결성됐다. 창립 회원으로는 위 네 분과 양은용 교수(원광대), 이정배 교수(감리교 신학대), 전해주스님(동국대), 최일범 교수(성균관대), 이제민 신부(전 광주가톨릭대 교수), 한순희 수녀(전 성심여대 교수)까지 모두 열 명이었다.

그 후 한순희 수녀와 이제민 신부는 개인사정으로 2004년에 떠났고 김용표 교수(동국대), 전현식 교수(연세대),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와 최현민 수녀(현 씨튼연구원 원장) 미산스님(중앙승가대), 심원스님(서울대연구원), 김종욱 교수(동국대), 이규성 신부(서강대), 고시용 교수(원광대), 노영상 교수(호남대 총장)가 동참하면서 현재 열세 명으로 구성됐다. 1994년 2월 24일 씨튼연구원에서 첫 종교인 모임이 있었던 이래로 부분적인 세대교체를 하면서 종교인 간의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한 종교대화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2. 씨튼연구원의 활동내용

1) 종교인 모임

지금까지 씨튼연구원에서 해온 종교 간의 대화 주요 사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종교인 모임과 종교대화 강좌, 그리고 출판사업이다. 1994년부터 시작한 전문종교인의 모임은 연 4회 정기모임을 열고 그중 세 번은 씨튼연구원에서 세미나를 하고, 1회는 1박 2일 일정으로 피정의 집, 사찰, 향교, 수련원 등을 찾아가 각 종교의 기도나 의례를 직접 체험하며 세미나를 해왔다.

종교인 모임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1994년부터 2003년까지 10년간은 종교대화 전반에 관한 책을 읽고 발제 토론해 왔다. 그간 읽은 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지구촌의 신앙’, 일본의 종교대화 경험을 실은 ‘대승선’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순례’, 서학이 조선에 알려지면서 한국 유학자와 초기 그리스도교인 사이에 오갔던 글들 중 ‘서학변(西學辯)’ ‘천학문답(天學問答)’ ‘천학고(天學考)’ ‘상재상서’ 또 조선시대 ‘불교와 유교’ 대화와 관련한 논서인 ‘불씨잡변(佛氏雜辨)’, 함허당의 ‘현정론(顯正論)’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 최치원과 최승로의 삼교융합사상, 그 밖에 ‘유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대화를 다룬 중국계 비교철학자 줄리아 칭의 ‘유교와 그리스도교’, 한스 큉의 ‘믿나이다’ 등이다. 이러한 책과 논문들에 대한 토론 내용을 녹취, 정리해 2010년에 운주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화’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동안 종교 간 대화를 회고할 때 우리가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마음을 열고 배우고자 한다면 자신의 삶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느꼈다. 초기 10년간 교의적 차원에서 나눈 종교 간의 대화는 이후 2004년에서 2013년까지 10년간에 더욱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린 종교인 모임을 구상하면서 생태문제를 주제로 한 대화로 이어졌다.

후기 10년 동안 토론해온 책은 현대 생태이론과 종교와 생태의 연계적 관계를 다룬 것들로 그간에 읽은 논문과 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Environmental Ethics(ed. Andrew Light and Holmes Rolston III) 안에서 클레어 파머의 ‘환경윤리개관’, 폴 테일러의 ‘자연존중의 윤리’, 브라이언, 노튼의 ‘환경윤리와 온건한 인간중심주의’, 존 캅의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경제질서를 향하여’, 카렌 워렌의 ‘생태학적 여성주의와 생태계 생태학’,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머레이 북친의 ‘휴머니즘의 옹호’, 하버드세계종교연구소가 편찬한 ‘불교와 생태학’ ‘유교와 생태학’과 ‘도교와 생태학’ 중 3개씩의 논문을 번역 의뢰한 논문 6개, 샐리 맥페이그의 ‘기후변화와 신학의 재구성’,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 ‘복잡계 이론’ 에코포럼 편 ‘생태적 상호 의존성과 인간의 욕망’ 중 ‘생태학에서의 시스템과 상호 의존성’과 ‘자연 속에 숨은 질서’,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마음의 생태학’, 재닌 M. 베니어스의 ‘생체모방’,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이다.

생태를 주제로 한 종교인 모임이 진행된 최근 5년 사이에 회원 간의 일부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이번 심포지엄은 그간 이뤄진 세미나 전체를 모두 포괄하기 어려웠던 한계가 있었다. 대신 지난 10년 동안 해온 생태 관련 세미나는 ‘생태와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한 책으로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20년간의 종교인 모임을 되돌아보면서 그간 함께해 주신 분들을 떠올린다. 연구 수업준비 논문발표 등으로 바삐 살아가는 교수님들이 별도의 시간을 내어 모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20년간 종교인모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 간 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지닌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20년간 이 모임에 동참해 풍요로운 종교간 대화가 이뤄지도록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린다.

2) 종교대화 강좌와 출판사업

종교인 모임 외에도 씨튼연구원은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을 위해 종교대화 강좌를 해왔다. 이 강좌를 통해 불교, 유교, 무교, 도교 등 우리 전통문화를 이뤄온 주요종교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또한 씨튼연구원에서는 강좌 내용을 녹취 정리해 책으로 출판해 왔다.

지난 20년간 종교대화 강좌주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994년 ‘선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시작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수도생활’ ‘유교와 그리스도교’ ‘한국 무교와 그리스도교’ ‘도교와 그리스도교’ ‘한국 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순례’ ‘유다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의 순례’ ‘동양적 시각에서 본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신학’ ‘그리스도교 시각에서 본 유교(時中)의 영성’ ‘현대 영성의 이해’ ‘한국 종교의 이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비교 영성’ ‘생태사상과 그리스도교의 대화’ ‘생태사상과 동아시아 전통의 대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생태영성’ ‘생태적 감수성 기르기-생태영성과 예술’ ‘생태영성과 공동체 운동’ 그리고 2013년에는 ‘몸·마음·명상’을 주제로 강좌를 해오고 있다.

셋째는 출판 사업으로 지금까지 해온 종교대화 강좌를 녹취, 정리해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종교대화 강좌 시리즈로 출판해 왔다. 지금까지 나온 책으로는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수도생활’ ‘그리스도교와 무교’ ‘한국 신종교와 그리스도교’ ‘도교와 그리스도교’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순례’ ‘유교의 시중과 그리스도교의 식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수행’ ‘현대 생태사상과 그리스도교’가 있다. 그 밖에 ‘인도의 신비사상’ ‘동아시아 종교전통과 그리스도교의 만남’ ‘논어의 그리스도교적 이해’ ‘노자의 그리스도교적 이해’는 도서출판 영성생활에서 출간됐다. 또한 2013년 10월에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생태영성’ ‘불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으로 만나다’가 운주사에서 종교대화 시리즈로 나왔다.

3. 종교 간 대화와 생태문제 간의 접점

오늘 우리는 ‘하나뿐인 지구’라는 이 시대의 화두를 갖고 이곳에 모였다. 지구 생태계가 겪는 위기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여러 상념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상영했던 월·E(WALL-E)라는 영화도 생태위기에 대한 하나의 상념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만든 듯 싶다.

그 영화에서 사람들은 환경오염으로 더는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되자 새로이 살 곳을 찾아 모두 떠난다. 영화에는 지구 폐기물 수거·처리용 로봇(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월·E가 나온다. 월·E는 수백 년간 텅 빈 지구에 홀로 남아 인간이 남긴 쓰레기를 청소하며 생활하고 있다. 영화에서 오염된 지구를 떠난 사람들은 호화함선 엑시온호에 타고 자동화된 레일에서 손 하나 까딱 앉고 오뚜기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마 우리 중에도 이렇게 지구를 떠나 다른 도피처를 꿈꾸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또 어떤 이들은 생태위기의 심각성을 아예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타이타닉호 사건은 이런 이들의 마음상태를 잘 보여준다. 배의 항로에 빙산이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는 많았다. 그럼에도 진로는 정해져 있었고 누구도 그 방향을 바꾸길 원치 않았다. 사람들은 배가 괜찮을 거라는 무한한 신뢰감을 갖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처럼 우리 또한 생태위기의 현실을 외면하고 현재 상태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지금은 이런 마음을 일깨워 현실을 직시하도록 촉구할 이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종교인들이야말로 이런 소명을 받은 이들이 아닌가 싶다.

나는 종종 가까운 성곽에 산책을 간다. 거기서 소나무들이 곧게 줄기를 뻗지 않고 이리저리 휘어져 자라는 것을 본다. 왜 그럴까 하며 유심히 바라보니 태양빛을 받기 위해 옆의 나뭇가지와 간격을 유지하며 가지를 뻗고 있는 게 아닌가. 주변의 상황들을 고려해 가며 가지 뻗기를 하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는 ‘생태적 적소(Ecological Niche)’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지구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나름의 ‘생태적 지위(혹은 적소)’가 있다. 지구가 지금까지 존속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생태적 지위 덕분이다.

인간 역시 지구생태계의 한 종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인간은 자신의 생태적 적소를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생태계와의 관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손·발을 뻗어 생태계를 파괴시켜 왔다. 생태위기의 현실 앞에서 인간의 생태적 적소에 대해 성찰하고 새로운 영감을 부여할 소명 또한 종교인들에게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인간의 생태적 지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우리네 삶의 자리를 되돌아본다. 지구가 생태위기 상황을 겪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산업혁명 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돌입해 대량생산 기술에 개발되고 그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대량소비가 이뤄지면서부터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다시 대량생산을 유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생태파괴가 가속화돼 왔다. 이렇게 볼 때 생태계를 살리는 길은 소비자인 우리에게 달렸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물질적 풍요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다시 묻는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존재로 사느냐에 달려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적게 소유함은 생태를 회복하는 길이고 미래 세대들을 위한 것이기 이전에, 우리 자신이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말이다. 그럼에도 탐욕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 세계 영성가들은 한목소리로 비울수록 충만해지고 적게 가질수록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소욕지족(少欲知足)’할 줄 아는 지혜, 거기에 행복의 비결이 숨어 있다고 말이다. 소욕지족은 어떠한 욕망도 없는 극기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것을 갖고도 거기에 만족할 줄 아는 지혜를 말한다. 이 지혜를 얻는 길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자리, 바로 거기가 생태와 종교가 만나는 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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