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수익 높이는 데만 신경 써 위험관리 소홀

국내 금융계에서 처음으로 수장(首長)이 무더기로 중징계를 받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상당’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임 당시 파생금융상품 투자에 따른 위험관리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다.

황 회장뿐만 아니라 전·현직 금융기관 최고 경영자도 파생상품 투자에 따른 손실 등에 대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시중은행이 대출 규모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를 확대해 은행 수익을 늘리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또 최고 책임자가 금융 파생상품 투자로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험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고위험인 파생상품에 투자할 때는 철저한 리스크관리와 헤지(위험회피)가 기본”이라며 “우리은행은 아무런 헤지수단 없이 발가벗은 상태로 파생상품에 투자해 손실을 키웠다”고 꼬집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은 파생상품 투자 손실 이외에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경영으로 은행의 부실위험을 키웠다. 국내 은행들의 과당경쟁을 유발한 황 회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경영진이 활동한 경영 결과에 대해 사후에 징계를 내리는 것은 아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황 회장이 2006~2007년 당시 파생상품에 투자할 때 세계적인 신용평가사들이 최고등급을 부과한 증권을 매입했으나 세계 경제위기로 자산이 부실해졌다. 따라서 세계경제 위기로 인한 손실을 두고 징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금감원도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황 회장이 우리은행에서 퇴임한 후인 2007년 6월 우리은행 종합검사를 실시했을 때 파생상품 투자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영서 서강대 교수는 “금감원이 황 회장의 파생상품 투자과정 적법성을 문제 삼는다면 이미 투자가 이뤄졌던 2007년 종합검사 때 문제제기를 했어야 한다”며 “2년 전 검사 때는 조용히 넘어갔던 문제를 지금 와서 들추는 것은 실패한 투자에 대한 문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국내 파생상품 시장이 제대로 발전되지 않아 감독 체계가 미흡한 점도 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이런 상태에서 감독당국이 결과만 보고 담당자를 처벌하는 것은 당국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 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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