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재연구원, 서적 발간
​​​​​​​13건의 ‘내가 만난 국보·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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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보로 지정된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2.13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920년 경기도 팔당 인근에서 봄나물과 참기름을 팔아 생계를 잇던 한 노부부는 야산에서 나물을 캐다 흰색 병을 발견한다. 목이 길어 참기름을 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할머니는 직접 짠 참기름을 흰색 병에 담아 중간 상인에게 1원씩 받고 넘겼다. 참기름이 든 흰색 병은 손에 손을 거쳐 한 일본인 부인에게 갔다. 부인의 남편은 골동품상(무라노, 村野)이었다. 남편은 참기름병이 조선백자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조선백자를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에 다시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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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이 만든 철사 대병 1만 5천원에’, 경성일보(1936년 11월 23일자) (제공: 문화재청, 한국학술정보) ⓒ천지일보 2023.02.13

이후 여러 수집가를 거쳐 1936년 열린 경매에 이 조선백자가 출품됐다. 낙찰가는 1만 4580원. 이는 당시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거금을 주고 조선백자를 낙찰받은 사람은 우리나라 최초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오늘날 간송미술관)의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이었다. 이 유물이 바로 1997년 국보로 지정된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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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13건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2.13

◆생생한 연구자들의 조사 소회

13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13건의 이야기를 담은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책자는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자들이 직접 국보와 보물을 조사한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국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등 13건의 주요 문화유산의 조사 소회와 뒷이야기가 담겨 재미를 더했다. 

특히 책에는 6.25전쟁 당시 목숨을 건 피난길 속에서 지켜낸 초상화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바로 보물 ‘서경우‧서문중 초상’ 이야기다. 서경우 선생은 조선 인조 연간에 우의정을 지냈고, 서문중 선생은 그의 손자다. 

대대로 이어오는 종택(宗宅)이 있는 곳은 경기도 포천이다. 6.25전쟁 당시 이곳은 그야말로 총탄이 빗발치는 지역이었다. 이때 후손들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조상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크기가 커 이동이 쉽지많은 않았다. 4척(1.2m)이 넘는 커다란 영정함 두 개를 수레에 실은 채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 길을 떠나는 식으로 목숨을 건 피난길을 택했다. 피난길의 여정은 매우 고달팠지만, 덕분에 초상화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이 두 그림은 17세기 초와 18세기 초에 각각 유행한 화풍이 잘 반영돼 있고, 그림을 담는 함도 역사성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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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97호 서경우 초상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2.13

◆조선시대 시대상 잘 담겨 

재산 상속에 대한 시대상을 잘 반영한 분배 문서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담겼다. 흔히 우리는 장자 중심의 재산 상속과 제사가 대대로 이어져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7세기 초반까지는 남녀 똑같이 상속하는 균분상속과 모든 자손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의 방식이 지속됐다. 그러다 17세기 중반부터 장남이 주로 재산 상속을 받고 제사를 지내도록 변했다. 이 양상은 가족이나 친척에게 나눠준 재산을 기록한 문서인 분재기(分財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보물로 지정된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 일괄’ 속 분재기는 두 시기의 재산 분배와 제사 방식이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준다.

문서 속 한 내용은 이렇다. 1564(명종 19)년 10월 24일 김경순은 강주신의 딸과 혼인했다. 강주신은 딸이 혼인하자 결혼 당일 딸에게 논과 노비를 증여했고, 처삼촌 강주보는 조카사위인 김경순에게 논을 증여했다. 김경순이 증여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경순 부부가 강주보 내외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17세기까지 사위는 처가에서 그 집안의 아들과 똑같이 재산상의 권리를 누렸고, 제사의 의무도 지녔다. 따라서 사위가 처가의 터전을 이어받거나 딸과 사위를 포함한 외손도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흔했다.

균분상속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킨 것은 17세기 중반이다. 조선 사회는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전란을 겪은 후 예학(禮學)이 발달하면서 조상에 올리는 제사가 더욱 중시됐고 여성들의 평등권이 박탈된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분재기에는 재산 분배 방식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가족에 대한 애정 이야기, 조상에 대한 효 이야기, 지극한 자식 사랑 이야기도 담겨 부안김씨 가문의 경제 사정은 물론, 당시 가족 제도와 사회 구조, 사회 변동까지도 규명할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 책자는 문화유산 정기조사와 보존관리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개인 소장가, 문중, 사찰 및 전국 국사립 도서관과 박물관 등에 배포된다.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이번 책자를 통해 문화유산의 국보보물 지정 이후 관리 과정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미술기록 문화유산이 안전하게 전승돼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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