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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 씨앗이 들어 있는 열매

글, 사진. 허북구 나주시천연염색재단 운영국장

아주까리(Ricinus communis)는 대극과의 식물이다. 열대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 식물이지만 온대지방에서는 겨울에 얼어 죽기 때문에 한해살이 식물이다. 원산지는 북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이다. 씨앗으로 번식하며 키는 2~3m까지 자란다.

우리나라 토종식물은 아니지만 우리 토종식물보다도 더 친근하고 토종식물처럼 생활 속에서 이용되어 왔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 동네방네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 이처럼 노래와 시에도 자주 등장해 정서적으로도 가까운 식물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에 의하면 어느 집이든 간에 집집마다 아주까리 한 그루는 심어 두고 있었다. 가을철이면 나물로 사용하기 위해 잎을 따서 시래기를 엮듯 창고나 처마 끝에 엮어서 매달아 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어른들은 아주까리 씨앗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 민간약, 등잔기름 등으로 요긴하게 썼다. 아주까리는 이처럼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의존도가 높은 식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기억의 대상이었다. 어른들은 가끔 아주까리를 보면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 놈들이 비행기 기름으로 쓴다며 피마자를 많이 공출해 갔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피마자를 따서 모았다”라며 아픈 기억에 화를 삭히지 못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만큼 애증이 얽혀 있는 식물이 아주까리이다.

‘피마자’ 이름은 잎사귀와 열매의 모양에서 유래

정서나 이용 측면에서 토종 식물 못지않게 친근한 아주까리는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매우 오래됐다. 중국에서는 이 식물이 육조시대인 500년 경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唐) 나라 때인 659년에 발행된 <신수본초(新修本草)>에 약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918년에 발행된 <본초화명(本草和名)>이라는 의약서에 피마(萆麻)와 함께 일본 이름 ‘가량가지파(加良加之波)’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주까리에 대해 불교 경전에 있는 식물로 불교와 함께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도입 시기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초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도입에 관한 문헌은 없고, 조선시대 세종 때(1443년) 발행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 약용으로서의 용도가 기록되어 있다.

아주까리가 중국에서 전해왔음을 나타내듯이 한국·중국 이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이름 중의 하나가 피마자(蓖麻子)이다. 우리나라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아주까리 대신 피마자(蓖麻子)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아주까리의 씨앗에 대해서 피마자(蓖麻子)라고 한다. 피마자의 이름은 잎이 대마 잎과 비슷하면서 매우 크고, 씨앗은 소 진드기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된 것이다.

피마자의 우리말인 아주까리는 17세기 문헌에서 ‘아ᄌᆞᆺ가리’로, 19세기 문헌에는 ‘아ᄌᆞᆺ가리’에서 제2음절의 모음 ‘・’가 ‘ㅜ’로 변화하고 된소리화를 거쳐 ‘아쥬ᄭᅡ리’가 나타나게 되었다(우리말샘). “‘아차질가이(阿次叱加伊)’에서 ‘-아가리’ ‘아족가리’ ‘-아주까리’ 등으로 변화된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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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

고대부터 약과 기름으로 이용되어 온 아주까리

아주까리의 이용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이집트에서는 6000년 이전의 유적에서 씨앗이 출토되었다. 인류 최초의 의학서인 <에베루스 파피루스(Eberus Papyrus)>에도 아주까리 씨앗 기름이 기재되어 있다. 고대에는 씨앗 기름을 약용과 등불용 기름으로 썼다. 고대에는 악마가 체내로 들어간 것이 병이라는 믿음 때문에 악마를 체외로 제거하기 위해서 아주까리기름을 약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아주까리기름의 주성분인 리시놀산(ricinoleic acid)과 관계가 있다. 이 리시놀산 성분은 우리 몸의 장에 들어가게 되면 물에 분해되면서 설사작용을 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아주까리기름을 변비에 사용한 것과 더불어 무좀약 등 다양한 민간요법에 사용했다. 아주까리 씨앗에는 34~58%의 기름이 들어 있다. 이 기름은 불건성유로 점도가 매우 높고 열에 대한 변화가 적으며 응고점이 낮아 비행기나 자동차의 윤활유로 쓰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아주까리기름을 비행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본뿐만 아니라 점령지에도 재배를 하였다. 

아주까리기름은 복통 완화용, 근육 및 관절통 완화, 진균성 질병 치료 효과가 있고, 모발 성장 촉진효과와 모발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어 머릿기름으로 사용되었다. 아주까리 씨앗 기름은 이처럼 용도가 많지만 씨앗에는 독성이 매우 강한 리신(ricin)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것은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아주까리 잎은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누에 먹이로 사용하고 있다. 아주까리 잎을 먹인 누에에서 얻은 천연섬유는 최고급 외투나 양탄자로 이용되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는 아주까리 나무를 관상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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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중인 아주까리 잎

아주까리의 식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달

아주까리의 용도는 다양하지만 그 잎을 식용으로 하는 문화는 우리나라 외에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까리의 연한 잎을 데친 후 말려 묵나물로 먹는 풍습이 있다. 아주까리 잎나물은 겨울철의 단조로운 밥상에 색다름을 더해 주곤 하는 나물이었다. 특히 음력 정월 보름에 먹는 묵나물은 유명하다. 이때는 아주까리 잎나물을 총총히 썰어서 갖은 양념과 참기름을 혼합한 후 밥을 비벼 먹기도 했다. 또 아주까리 잎나물로 잡곡밥을 싸먹기 했는데, 그 문화는 지금도 시골에서 남아 있다. 

나물용의 아주까리 잎은 부드러운 잎을 채취하여 이용한다. 잎의 채취는 겨울에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할 수 있다. 채취한 잎은 건조시켜 저장하거나 한 번 데친 후 건조하기도 한다. 

건조된 잎으로 나물을 만들 때는 우선 맑은 물에 씻어서 먼지 등을 제거한다. 그 다음 냄비에 건조된 아주까리 잎과 물을 넣고 푹 삶는다. 삶은 뒤에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다진 마늘, 잘게 썬 양파, 대파, 액젓, 들기름 등을 넣고 버무린다. 그 다음 식용유에 살짝 볶고, 참깨 등을 첨가해서 이용한다.

아주까리 나물의 독특한 맛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어느 식품회사에서 잎이 크고 뻣뻣한 연잎 대신 쌈까지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 물음에 아주까리 잎을 추천했다. 아주까리 잎나물은 쌈의 재료로 뿐만 아니라 독특한 맛까지 가미해서 음식을 더욱더 맛깔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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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까리 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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