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베트남인 원고에
‘3000만 100원’ 배상 판결
정의당·민변 “역사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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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응우옌티탄 씨가 7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대한민국 상대 소송' 1심 선고기일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뒤 화상 연결을 통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피해자 응우옌티탄 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국가가 3000만100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2023.02.07.

[천지일보=홍수영·최혜인 기자]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측이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을 인정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다. 법조계와 정치권 등도 환영의 뜻을 내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 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7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 대한민국은 응우옌씨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당시 대한민국 해병 2여단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던 중 원고와 가족들로 하여금 방공호 밖으로 나오라 명령한 뒤 현장에서 바로 이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로 인해 원고의 이모, 언니, 남동생 등은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인권침해의 불법성, 피해 내용과 정도, 50년 이상 배상이 지연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000만원으로 정했다”면서도 “원고가 3000만 100원의 지급을 구하고 있다”며 배상금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원고 응우옌 티 탄씨는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에서 ‘괴룡1호작전’을 수행하던 중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방공호에 대피해 있던 원고와 원고 가족들을 총과 수류탄으로 위협해 밖으로 나오도록 한 후 원고의 가족들을 살해하고 당시 8세였던 원고에게도 총상을 입혔다고 주장하며 2020년 4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배해상을 청구했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는 재판과정에서 ‘전투 중의 정당행위였다’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불법행위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고의 변호인단은 재판이 끝난 뒤 “금액 자체가 크진 않지만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높이 평가했다.

배상금액에 대해선 “청구 금액이 3000만원을 넘어야 판결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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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중이었던 1968년 2월12일 일어난 '퐁니·퐁넛 민간인 학살사건' 직후 미군이 촬영한 퐁니·퐁넛 마을 모습. (출처: 뉴시스)

이와 관련 정치권 등 각계에서 판결을 환영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너무나도 뒤늦은 판결이나 한국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역사적인 첫 판결”이라며 “미국의 동맹군이라 하더라도 무장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권적 전쟁범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응우옌 티 탄씨 외에도 우리 군에 의해 오랜 트라우마를 견디며 살아오셨을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응당한 사과와 국가의 배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정의당은 2019년 김종대 전 의원이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특별법 제정’을 통해 베트남전 시기 민간인 피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정부의 조치를 촉구한 바 있다”면서 “전쟁 피해를 비롯한 인권 문제에 국가, 인종을 넘어 피해자와 연대하고 피해 구제가 이뤄질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논평을 내고 “베트남 전쟁이 종료된 1975년으로부터 약 48년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으나, 대한민국 법원이 민간인학살을 인정하면서 대한민국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 판결이 최초”라고 강조했다.

민변은 “이 판결은 가해자의 국적이나 피해자의 국적이 어느 나라인지와 상관없이, 전쟁 중에 무장한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인권과 정의를 확인해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퐁니 사건은 최소 80여개로 추정되는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들 중 단 하나에 불과하다”며 “향후 이번 판결이 마중물이 돼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진실이 포괄적으로 규명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보다 구체적으로 국회에서는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할 것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관련 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배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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