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정치학 박사ㆍ고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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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러나고 있는 국내 간첩 조직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이렇게 깊숙이 그리고 광범위하게 간첩이 암약해 있었는가 하는 사실에 국민들이 충격을 느끼고 있다.

방첩당국에 따르면 제주도를 거점으로 ‘ㅎㄱㅎ’라는 조직이 발각되고, 창원과 진주, 전라북도 전주 등을 거점으로 전국 각지의 지하조직을 총괄하는 ‘자주통일 민중전위’라는 조직이 드러났다.

‘ㅎㄱㅎ’은 ‘조국통일의 한길을 수행하는 모임’의 약자로 ‘한길회’를 만들었고, 이 이름을 첫 자음만 모아 붙인 것이라 한다.

진보 정당의 간부가 2017년 7월 29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3일간 조직의 운영 방안, 암호 통신 등을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 전 2016년에 같은 방식으로 결성된 민중전위 조직은 민주노총에도 침투해 있고 진보 정당과도 연계돼 있다는 게 방첩당국의 판단이다.

방첩당국이 수년간 추적한 바로, 이 간첩 조직들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내 총책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이 공작원을 만나 지령을 받고 활동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6년에 창원 총책을 만나고 2017년에 제주 총책을 접촉해 지하조직 건설을 지시했으며, 민주노총에 침투해 장악하라는 지시를 하고 이후 각종 반정부 투쟁 지침을 하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18일 방첩당국은 서울, 경기, 광주, 전남,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민주노총 사무실을 비롯한 10여곳에 대해 동시 압수수색을 벌였다.

2021년 이른바 ‘충북동지회’ 조직이 드러난 바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민사회계 사람들이 간첩 혐의를 받고 검거되는 사건이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미국의 군용기 제조사 록히드 마틴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의 한국 공군 도입 반대 운동 등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드러나고 있는 조직의 실체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이다. 이 조직의 성원 중에는 21대 국회의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근무한 인사도 있다고 한다. 이 보좌관은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북한과 접촉하면서 각종 정보를 보고했다고 한다.

국회까지 깊이 침투해 있다는 점이 매우 충격적이지만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적발된 ‘일심회’ 사건 당시 그 조직원으로 국회의원 보좌관이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일심회 사건은 이른바 386 운동권이 대거 연계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국정원장이 전격 교체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인위적 수사 축소와 청와대 외부 압력 등의 의혹을 낳았다.

일심회 사건은 2000년대 크게 성장한 진보 정당 운동에도 큰 영향을 줬다.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고위 간부가 이 조직의 성원이었고, 간첩 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민주노동당은 분당이 됐고, 심상정 등이 현 ‘정의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진보신당’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물론 이 세력들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합친다. 민주노동당의 본류 계열이 워낙 강성하기 때문에 떨어져나간 진보신당 세력이 다시 합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유시민류(類)의 ‘국민참여당’도 가세해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진다.

2012년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은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과 ‘선거 연대’를 했고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후 비례대표 후보 선정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의 부정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분당을 하게 된다. 다시금 과거 민주노동당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세력만 남고 심상정류와 유시민류의 사람들이 이탈하면서, 심상정류의 사람들은 현 정의당을 만든 것이다. 본류만 남은 통합진보당은 결국 ‘이석기 RO 사건’에 휘말리며 해산되기에 이른다. 최근 불거지는 간첩 조직과 관련 등장하고 있는 ‘진보당’은 이 통합진보당을 전신으로 하는 정당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주노총이나 진보 정당, 시민사회계나 심지어 정치계의 사람들이 간첩 조직과 ‘멀고 가깝게’ 연계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 드러나고 있는 북한의 공작 실태와 국내 조직들의 연계 양상이 그다지 새삼스러운 게 아닌 것이다.

북한과의 연계 문제로 많은 국회의원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정당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위헌 정당 심판을 받고 해산한 게 2014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 2년 전 2012년 총선에서 현재 거대 정당으로 있는 민주당이 이 정당과 선거 연대를 해서 총선을 승리했었던 일련의 사안과 전말을 쉬 까먹었을 뿐인 게다.

이번에도 정의당은 방첩당국의 정보를 의심하며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을 비판한다. 민주당은 침묵한다. 앞서 설명한 역사적 궤적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본인들이 그 실체나 그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분단이 돼 있고 체제를 놓고 서로 대립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체제도 아니고 한국의 민주 사회와 북한의 ‘김씨 독재정권’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분단 과정에서 약 400만명이 희생된 6.25 전쟁의 참상이 있었다. 그 후 북한은 세계 최대의 독재국가가 돼 있다. 그 반쪽인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돼 있지만, 북한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이 돼 있지만 북한의 인권 실상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처참하다. 그런 북한의 독재정권이 핵무기를 만들어서 세계 8번째로 핵보유국가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사생결단의 독재정권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 경쟁국인 남한 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교란하고 내부에서부터 뒤흔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실체가 남한 사회에서 북한과 연계된 지하 조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사람이 한국 사회에 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그리 어렵지 않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조금만 깊이 우리 역사와 우리 사회를 관찰해 보면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조금만 깊이 생각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건 경험의 영역이다. 완전한 실체까지는 그 메커니즘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설마?…”로 돌아간다. 그렇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결국 가장 안타깝게 가슴을 때리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반인권 현실이고 그 고통이다. 우리는 참 어렵게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북한 주민들은 그 50배, 100배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것도 항상, 너무나도 쉽게, 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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