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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화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격전지는 폐허가 됐다. 당초 신속하게 끝날 것 같았던 전쟁은 우크라이나 측의 저항과 러시아 측의 전략적 목적에 따라 소모전으로 양상이 바뀌었고, 전쟁 당사국은 물론 주변국들은 종전을 위한 신경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파괴된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시의 아파트. (출처: AP=뉴시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러시아가 지난해 11월 하순 이른 바 소모전(war of attrition)’에 돌입한 이후 지난 11(모스크바 현지시간) 제병협동 지휘관으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지휘부를 교체한 것의 의미가 차츰 드러나고 있다.

서방과 그 동맹국 언론들은 세계 2대 군사대국인 러시아가 저개발국인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쩔쩔매면서 고전, 패색이 짙다는 취지의 심리전 전쟁보도를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발방지를 포함한 궁극적 해결책을 향해 묵묵히 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러시아 매체 이즈베스티야는 지난 16(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유명한 친러시아 야당 정치인인 빅토르 메드베드축(Victor Medvedchuk)의 기고문을 실었다.

메드베드축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한 후 체포돼 구금됐다. 최근 포로 교환 형식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에서 풀려나 현재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이즈베스티야에 보낸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비전과 평화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우크라이나 야당 정치인의 비전을 담았다.

지난해 224일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한 후 단 한 번도 지구촌엔 우크라이나 야당 정치인의 생각이 소개된 적이 없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국민들이 전쟁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며 약 20%로 추산되는 구금을 무릅쓴 반전시위에 나선 소식도 전해졌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의 화신이라는 서방이 지원하는 우크러이나 내에서는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주민들 이외에는 거의 100% 전쟁에 찬성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크라이나 야당 정치인 메드베드축은 러시아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러시아는 1990년대 초 냉전 종식을 동서진영 간 군사대결로부터 벗어나 무역과 경제통합의 새 국제관계로 옮아가는 과정으로 평가한 반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자신들의 배타적 세계지배를 위한 새로운 지정학(Geopolitics) 구축의 계기로 여겼다고 주장했다.

곧 소련과 러시아 연방은 냉전을 승패의 관점이 아닌 핵 재앙을 부르는 동서 간 군사대결을 해소하는 계기로 여겼다는 의미이다. 러시아가 독일 통일뿐만 아니라 이전 동맹국, 심지어 옛 소련의 공화국들이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환영했다는 게 그 증거라는 해석이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냉전종식을 러시아에 대한 승리로 이해, NATO 동진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특히 친러와 반러로 극명하게 분열된 우크라이나 인민들의 갈등을 부추겼다고 봤다. 메드베드축은 친러 주민들을 분리주의자국가위협세력으로 몰아 무력충돌을 야기, 비민주적 방식으로 나라를 초토화시켜 지정학적 이익을 얻는 냉전적 방식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수백년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거의 동일한 정서를 공유하는 같은 사람, 두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선 전 러시아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희극배우(코메디언)로 활동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메드베드축은 결국 우크라이나 민중의 상당수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 유럽과 미국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죽음과 투옥의 고통으로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 나라가 지정학적 대결의 장소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 운동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지역의 전쟁 상황이 오는 224일로 1년을 맞을 때까지 지구촌이 단 한 번도 주목하지 않았거나 주목하기를 원치 않았던 우크라이나 야당 정치인의 목소리가 116, 이제서야 전해진 것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2024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둘 다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같은 해 11월 미국도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통상 대통령선거 1년 전쯤 후보들의 출마 선언과 함께 선거전에 돌입한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양국 모두 대통령이 국가수반으로서 민주정치를 영위하는 정상국가라는 점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젤렌스키의 전쟁을 반대했던 세력이 정상적 선거제도를 통해 친서방 세력을 몰아내는, 일종의 확대된 내전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러시아의 이런 큰 그림이 모든 전장에서 육해공 전군이 동시에 총공세를 벌일 수 있다는 취지의 전쟁 지휘부 개편을 바탕으로 인명살상을 최소화하는 소모전을 이어가는 속셈으로 해석된다.

일상용어에서 소모전은 말 그대로 성과없이 역량이나 자산 등을 헛되이 쏟아붓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군사전략에서 소모전이란 명확한 계획을 갖고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특정한 작전유형이다. 기동전(war of maneuver)의 상대 개념이다. 쉽게 말해 우크라이나는 자금은 물론이고 부족한 화력과 물자 등 보급 일체를 나토(NATO), 즉 미국이 조달해 주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 소모전은 미국과 우크라이나 납세자, 민중들이 이 전쟁을 지속하는 데 따른 반감을 극대화할 목적이 짙다. 정상국가처럼 대통령 선거운동이 가능해지려면 우선 전쟁의 포화를 멈춰야 한다. 2024년에 대선을 치르는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에서 전쟁 상태에서 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은 나라를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역설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이다.

야당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미국은 이미 미국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이 전쟁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반 바이든 목소리가 높았다. 대선 후보 출마가 임박한 미국에서 다른 나라 전쟁을 지원하는 대선후보가 지지를 얻기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어차피 미국이 돈을 대주지 않으면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

전쟁을 멈추자고 더 적극적으로 말하는 자가 더 많이 양보해야 하는 게 종전의 이치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미 전쟁 경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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