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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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방형의 다듬은 돌을 이용해 구축한 석축

전장 4㎞ 석성으로 구축한 포곡식 대성 

보개산성의 축조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자료를 보면 좁고 긴 계곡의 한쪽 면을 이용하여 돌로 축조한 산성이라고 되어있다. 산성 서쪽으로 지장봉, 북대와 동쪽으로는 고남산(644m), 북쪽으로 금학산(947m) 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종자산(642m)이 위치하고 있다. 거대한 산을 능선으로 포곡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형태의 포곡식 형태의 장성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축조방법이다. 

남한지역에 남아있는 고구려 보축성의 형태도 포곡성이 주류를 이룬다. 장상에 축조된 백제식 테메성을 정점으로 능선을 따라 판축성을 쌓아 포곡을 이루고 있다. 이미 소개한 양평 함왕산성, 그리고 양구 비봉산성, 홍천 대미산성 등의 형식이 그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보축하게 되면 자연 내·외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보개산성도 2005년 지표조사를 통해 외성과 내성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석축을 쌓지 않은 험준한 곳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거나 작은 돌과 흙을 다져 쌓는 방식의 판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산성은 기반암인 응회암을 자연석 또는 반가공하여 사용하였다. 성의 규모는 전체 길이가 4495m, 잔존구간의 성벽길이는 443m로 조사되었다. 성내의 유구는 문지 1개소, 수구 2개소, 건물지 3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서문지 부근에서는 통일신라의 것으로 보이는 단판복엽의 8각석등대좌석(角石燈臺座石, 41×34×23㎝), 고려초기로 추정되는 석조비로자나불상(石造卑慮遮那佛像) 등이 조사됐다는 기록이 있다. 

용인시 석성산성을 또 보개산성이라고 부른다. 이래서 보개산성을 얘기할 때 착오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고구려 성에 ‘보(寶)’자를 쓴 경우는 충주 노은면에 있는 보련산성(寶蓮山城)을 들 수 있다. ‘寶(보)’자와 고구려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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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암반을 이용해 구축한 치성

전혀 보이지 않는 와편

새벽 7시 글마루 취재반과 한국유적조사연구원 조사단은 서울을 떠나 2시간을 소요하여 포천시 영역의 보개산성 협곡에 오를 수 있었다. 산성을 다룬 한 블로그에서 적시한 대로 답사반을 태운 차량이 움직였다. 영평에서 전곡으로 가는 37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오가리 삼거리에서 철원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약 8㎞를 달렸다. 여기에서 중리 저수지 쪽으로 좌회전하여 저수지를 우측으로 돌아가면 저수지가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삼거리가 나왔다. 

이곳에서 좁은 계곡을 따라서 약 4㎞를 올라갔다. 보개산 우측에 계곡을 막아 축조한 산성이 나타난다. 정연하게 쌓은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 지역은 철원으로 가는 고대의 교통로가 지나가는 지역이었다. 이 성은 바로 이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축조한 것이리라. 

성을 안내하는 안내판에는 ‘보가산성’이라고 되어 있다. 포천에서는 이 성을 보개산성이라고 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의 기록대로 보개산성이라고 통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본래 보개산성에서 보가산성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의 기록대로 통일하는 것이 타당하다. 

계속된 영하의 날씨 꽁꽁 얼어붙은 성지에서 와편을 수습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도 아직은 썩지 않았다. 올해는 비와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더디게 썩는 것이리라. 협곡을 막아 축조한 돌 성벽은 블로그에서 많이 본 보개산성의 모습이다. 답사반은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장방형의 벽돌처럼 치석한 고식의 성돌이 많이 눈에 띈다. 이런 다듬은 돌은 성의 기초석에서 많이 발견된다. 할석일수록 상층부에서 조사되고 있다. 장방형의 긴 성돌은 바로 고구려 시기 축조된 것이다. 

그리고 후대 신라 혹은 궁예의 태봉시기 보축한 축성도 엇갈려 있다. 돌을 정연하게 다듬지 않고 마구 잘라 가져다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런 성벽은 무너지기 쉽다. 경기도 가평군 용문산 함왕산성에서 몽고 침공시 서둘러 쌓은 유례를 보는 것 같다.

성벽은 처음 협곡을 축조한 곳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3군데에서 확인되었다. 3중성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많이 무너져 내렸다. 경사가 가파르고 부근에서 와편이 수습되지 않아 건물지 확인은 어려웠다. 급속한 경사로 우물지 등도 확인이 안됐다. 이런 곳에서 보민(保民)이 가능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가파른 능선에 군데군데 큰 암반을 이용하여 구축된 네모진 형태의 치성(雉城)을 확인했다. 이 치성들은 판축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부는 많이 무너져 내렸지만 초창기 쌓은 석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조사단은 가장 높은 정상부근까지 올라가 석축을 확인했다. 다만 지세가 위험하여 더 이상의 답사가 어려웠다.

보개산성과 같은 성벽의 모양은 사실 중국에 있는 일부 고구려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구려성이라고 모두 정연하게 돌을 다듬어 쌓은 것은 아니다. 고구려가 북쪽 외세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는 돌을 정연하게 다듬을 시간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은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대항했을 게다. 

길림성 남부 통화현 적백송 고성과 건설산성 등에서는 이런 급조한 돌로 쌓은 형태를 찾을 수 있다. 국내성, 환도산성이나 오녀산성의 정연한 치석 석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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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간은 판축으로 쌓고 밖은 석축으로 보강했다

에필로그

보개산성은 확대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약 건물터를 찾고 석축 부근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지면 다수의 고대 와편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답사반이 와편을 조사하지 못한 첫 선례로 남게 됐다. 

전장 4㎞가 넘는 대규모산성 안에는 건물, 창고지 기타 부속 건물지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기록에는 우물지가 여럿 있다고 되었는데 찾지 못했다. 현재 보개산성은 포천시 향토유적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적으로도 지정해도 될 충분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토의 허리 지역에 이처럼 대규모 석축의 고구려 성지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포천시의 향토유적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 성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성은 연천군 임진강 일대의 작은 성지와 대조되는 전형적인 고구려계 포곡식성으로 대단위 성이다. 능선을 따라 평지와 맞닿아 읍성으로의 기능도 가능하다. 인천시 강화군 삼랑성, 경기도 김포시 비사성(문수산성)과도 비슷하다. 고구려의 웅장한 기상을 대변해주는 대단히 큰 성으로 확대된 학술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답사반은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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