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인성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실행위원장이 지난 7월 3일 오전 서울 청어람에서 열린 교회세습 제보 결과 발표 및 세습 시도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개신교 정기총회 앞두고 NCCK·세반연, 세습방지 입법 촉구
통합·고신·합신·기장 ‘세습금지’ 헌의안 상정… 관심 쏠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국 개신교계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등 각 교단 총회가 9월 정기총회를 준비한 가운데 교단마다 한 해를 이끌어갈 새 총회장 등 임원 선출을 비롯한 각종 헌의안과 예‧결산안, 사업계획 등 다양한 안건 처리를 앞두고 있다.

올해 정기총회는 추석주간인 9월 셋째 주간을 피해 둘째 주와 넷째 주에 집중 개최한다. 추석 전 9일 총회를 개최하는 교단은 예장통합과 예장백석, 예장대신, 예장합신 등이며, 추석 후 23일부터 총회를 여는 교단은 예장합동과 예장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침례교 등이다.

개신교계 안팎으로 가장 이슈가 되는 헌의안으로는 ‘세습(대물림)방지법 제정’이 눈에 띈다. 장로교 대표교단인 예장통합을 비롯한 예장고신, 예장합신, 기장이 세습방지법을 주요 헌의안으로 상정한 상태다.

개신교 내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한 장로교단 정기총회를 앞두고 교단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총무 김영주 목사와 9개 회원교단장 명의로 교회세습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해 관심이 끌고 있다.

NCCK 교단장들은 6일 성명을 통해 한국교계의 큰 병폐로 뿌리 깊게 박힌 교회세습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교회 내 신앙공동체에 치명적인 혼란을 줘 결국 교회의 파국을 불러올 것”이라며 교단들을 향해 세습방지법안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NCCK는 “담임목사 대물림은 2천여 년간 지켜온 교회의 일치, 거룩, 사도, 보편적 교회론을 훼손하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한다”고 교회세습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지난해 9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가 한국개신교 사상 처음으로 ‘담임목사 대물림(세습)’을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한 데 대해 이는 교회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는 교회세습의 근절 의지를 (교단 안팎에) 선언한 것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들은 “한국교회의 담임목사 대물림의 흐름은 교회의 공교회 정신을 상실하고 신앙공동체에 치명적이며 영적인 혼란을 가져와 결국 교회의 파국을 불러올 것”이라며 “올해 각 교단이 총회에서 교회세습방지 법안들을 통과시켜, 개신교가 세상과 교회로부터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목회자 84% 국민 61% “교회세습 반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담임목사직을 대물림하는 현상에 대해 목회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에 따르면 목회자 10명 중 8명꼴로 반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 국민들은 어떨까. 10명 중 6명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반연이 올해 초 ‘교회세습 여론 인식연구’ 조사 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설문조사에는 목회자 152명, 신학교수 74명, 신학대 학원생 336명 등 목회 관련자 562명과 평신도·일반인 1520명을 참여했다.

목회 관련자의 84.7%는 ‘담임목사 세습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찬성하는 목회자는 겨우 5.5%였다. 일반인도 61.6%가 반대 의견을, 찬성하는 이들은 4%에 불과했다. 세반연은 한국교회 병폐 중 가장 심각한 현상 중의 하나인 교회세습을 뿌리 뽑고, 이를 목표로 각 교단의 입법 운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해 11월에 출범한 기독교연합단체다. 이들은 올해도 각 총회에 공문 등을 통해 세습방지법 입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담임목사직 대물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거센 저항으로 여러 형태의 변칙적인 방법이 동원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세반연에 따르면 변칙 세습의 방법은 친한 목사나 측근을 담임목사로 내세워 잠시 교회를 맡겨두다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징검다리 세습’, 아들이나 사위 등에게 지교회 형태로 교회운영을 맡기고 이후 지속적으로 재산과 교인들을 지원하는 ‘지(枝)교회 세습’, 교회를 맞바꾸는 형태로 대물림하는 ‘교차세습’, 아버지와 자녀가 각각 교회를 운영하다가 반대여론이 잠잠해지는 시기에 합치는 ‘합병 세습’ 등이다. 이밖에도 교묘하게 변칙적으로 세습이 성행하고 있다.

◆급속히 번지는 교회세습 “범죄행위” 비판
세반연은 지난 3월부터 교회세습과 관련한 제보를 받아왔다. 이들은 7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세습이 감소하기는커녕 도리어 대형교회에서 중·소형교회로 급속히 번지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안겼다. 총 128건(중복포함)의 제보를 받아 이 중 61개 교회가 이미 세습을 끝냈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기존과 달리 중·소형 교회가 대다수를 차지해 심각성을 알렸다. 이 가운데 28개 교회는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목회자다. 주요 교단 총회장, 감리교 감독(목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출신이다. 한기총 대표회장 출신 길자연 목사와 현 회장인 홍재철 목사의 경서교회도 포함돼 있다. 세습을 찬성하는 이들은 세습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세반연 실행위원장 방인성 목사는 “대형교회가 불을 지핀 세습이 한국교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며 “아버지 목사의 권력과 부를 아들에게 대물림하는 교회세습은 교회법뿐아니라 사회윤리 측면에서 볼 때도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신학자인 이영재(전주화평교회) 목사는 최근 NCCK가 주최한 토론회에 나와 “교회세습을 추진하는 목회자들이 구약성서 중 제사장직 승계에서 직분 계승을 주장하는데 이는 성경적이지 않다”면서 “어느 구절에서도 아들이기에 직분을 계승했다는 성구가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해 세습방지법을 제정한 감리교단의 영향을 받아 예장통합과 고신, 합신, 기장 등 주요 교단이 ‘세습금지 입법’ 헌의안을 상정했다. 9일부터 열리는 각 교단 정기총회에서 총회대의원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한국교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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