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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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젓은 곤쟁이를 소금과 오이에 절여서 만든 젓갈이다. 곤쟁이는 곤쟁이과에 속하는 작은 새우처럼 보이는 것으로 바다와 민물에서 산다. 맛이 무척 좋다고 하여 감동해(甘動醢) 혹은 감동해(甘同醢), 감동해(甘冬醢)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고사로 인해서 권정해(權停醢권정해(權精醢충정해(充貞醢노하해(蓾鰕醢백하해(白蝦醢)라고 부르기도 한다.

1832(순조 32) 서장관(書狀官)으로 121~19일까지 청나라를 다녀온 김경선(金景善 1788~1853)이 쓴 연원직지(燕轅直指)’ 125일 자에 중국 요녕성(遼寧省) 여양역(閭陽驛)의 음식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곳의 곤쟁이젓은 우리나라의 감동젓과 같으며, 그 속에 오이지는 더없이 아름다워 저두자(猪肚子)라고 부르는데, 절편(切片)은 몹시 아름다웠다고 적고 있다.

중국 요서(遼西) 땅인 대릉하(大陵河), 소릉하(小陵河)의 감동젓에 대해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연행일기(燕行日記), 1777(정조 1) 이압(李岬)이 연행에서 견문한 바를 기록한 연행기사(燕行記事), 1791년에 개인적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쓴 김정중(金正中)의 연행록(燕行錄) 등에 기록하고 있다. 특히 김창업은 여양역의 감동젓에 대해 자색 새우젓을 파는 자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로 말하면 감동젓이다. 젓 속에 담은 오이가 굉장히 컸다라고 기록했다.

이 감동젓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16세기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필사본 음식방문(飮食方文)인 주초침저방(酒醋沉菹方)에 감동저(甘動菹)가 처음 등장한다. 이 책을 보면 감동이란 보라색을 띠는 작은 새우로, ‘곤쟁이’ ‘자하(紫蝦)’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다. 감동저는 이 감동으로 만든 젓갈(감동젓, 곤쟁이젓)을 절인 오이에 버무려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앞선 기록으로 세종 8(1426) 616일자에는 동자과(童子瓜)와 섞어 담근 곤쟁이젓 2항아리를 영접 도감에 보냈다(세종실록, 世宗實錄)’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동자과는 어린오이를 말한다.

문종 때도 명나라 사신이 자하해 세 항아리를 청했다(‘문종실록즉위 10173번째 기사).

이 중국 감동젓이 우리의 사신들이 자주 드나드는 여양역을 중심으로 담아 먹는 것으로 보아 동치미처럼 조선에서 전해진 젓갈인 듯하다.

1766(영조 42)에 유중림(柳重臨, 1705~1771)이 편찬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자하는 항상 하는 법에 따라 소금에 절인다고 했다. 곤쟁이젓은 주로 경기도와 황해도의 서해에서 만들어 왕실에 바쳤다. 일성록(日省錄)에 의하면, 1790(정조 14)에는 자하·세하(細蝦하란(蝦卵감동(感動)의 네 가지의 해()가 봉진됐다. 자하해가 많이 사용되면서 이에 대한 구분도 자세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전복이나 소라를 잘게 썬 데나 오이나 무 채 썬 데 자하해를 넣는다고 했다.

1924년에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감동젓이라고 적고 여러 가지 한자 이름을 적어 뒀다. 이 책에 의하면 감동젓은 곤쟁이젓이다. 당시 해주에서는 굵은 체에 곤쟁이젓을 걸러서 무를 채 쳐서 넣었다가 익혀서 먹었다. 순무젓국찌개에는 별도로 거르지 않고 그냥 넣어도 좋다. 특히 봄이나 가을에 깍두기를 만들 때 넣는다고도 했다. 자하젓을 익혀둔 항아리 위에는 기름조각이 떠오르는데 이것을 감동유(感動油)라고 부른다.

이것을 떠내어 모았다가 고기를 지져 먹을 때 혹은 육회를 먹을 때 조금 떠서 먹으면 참기름 같고 맛이 달고 고소하다고 했다. 이와 같이 자하해는 음식을 만드는 데 좋은 양념 구실을 했다.

자하해는 생선을 먹고 독이 들었을 때 해독제로도 쓰였다. 빙허각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백하해가 곤쟁이젓이며, “복어를 해독하나니라고 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전집(星湖全集) ()감동(感動)’은 곤쟁이와 오이를 함께 절여 만든 감동젓과 발음이 같다. 김정국이 곤쟁이를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해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곤쟁이를 의미하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넣어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나온다.

이 이야기는 성호의 족손(族孫)인 이동환(李東煥, 1681~1753)이 좋은 나물을 보내 준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보낸 시() 말미에 옛날 어떤 사람이 김사재(金思齋)에게 곤쟁이를 선물하였네. 사재가 답례하기를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하게 합니다(令人感動)” 하니, 그 사람이 농담은 우선 그만두시지요(戲語權停)”라고 답신을 보냈다네. 이 이야기는 내가 송곡(松谷) 어르신께 들은 것이네. 미련(尾聯)에 그냥 언급해 보았으니, 부디 한번 웃어 주시게라고 적은 내용이다. 이 내용은 감동이라는 단어를 넣어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지 감동젓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아닌 것 같다.

1924년에 위관(韋觀) 이용기(李用基, 18701933)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곤쟁이젓과 관련된 옛이야기가 나온다. “옛적에 중국 사신(使臣)이 해주를 지나다가 이 젓을 맛보더니 눈물을 흘리고 차마 먹지 못하거늘 조선 관리인 원접사(遠接使)가 그 이유를 묻자, 사신이 말하되 내 노모가 만 리 밖에 계신데 이런 맛을 못 잡수시니 그로 인하여 감동하여 먹지 못하노라 하였다 하기로 감동젓이라 하였나니라는 기록이 보인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조선전기 문신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이가 임시변통을 잘했는데, 친구가 감동젓을 보내자 어득강이 이렇게 보낸 것을 어찌 감동치 아니할까 하고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친구가 답장에서 고의로 임시변통이 너무 심하니 이후는 권도로 정지하라 했다 하기로 권정젓(權停醢)이라 하였나니라고 적었다.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이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를 죽인 고로 남곤·심정을 소인배라 하기로 곤정젓이라 하였나니 두 사람을 미워서 부르나니라는 이야기도 소개했다.

이옥(李鈺)은 자하라고 적지 않고 권정(權精)이라 적고서 당시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산골짜기에 살면서 바닷가에 놀러간 사람이 물고기의 크고 작음과 좋고 나쁜 것도 모르고 함부로 회()를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가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곤쟁이를 예로 들어 놀렸다. 그러면서 곤쟁이는 새우로 붉으면서 매우 가는 것이라고 했다. 속담에 곤쟁이 주고 잉어 낚는다는 말이 있는데, ‘적은 자본을 들여 큰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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