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괴롭힘 설문조사

직장인 10명 중 3명 “경험 有”

비정규직·20대·여성 더 ‘취약’

인식 개선됐지만 심각성 ‘여전’

“법 적용 확대로 ‘사각’ 없애야”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1. 새로운 팀으로 배치됐는데 실수했다는 이유로 팀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라고 비난받았고, 팀원들로부터 왕따 등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쳐갔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해선 안 될 시도까지 하게 됐습니다.

#2. 병원에서 일하는데 갑질과 ‘태움(괴롭힘)’이 너무 심합니다. 원장과 수간호사의 태움 때문에 입사 동료 8명이 스스로 사직까지 했고요. 그냥 그만두는 게 너무 억울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청에 신고했습니다. 이후 원장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근로감독관도 봐주기식 대처를 하자 한 간호사는 극단선택 시도까지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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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지일보 2022.07.15

직장인 10명 중 3명(28.0%)이 지난 1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고,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 10명 중 4명(44.6%)이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경험·대응’에 관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다.

특히 평균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의 22.1%는 회사를 그만뒀는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절반(47.4%) 가까이 퇴사해 대기업(11.3%)의 4배가 넘었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34.5%)·20대(32.0%)·여성(30.6%)의 경우 정규직(13.4%), 50대(15.9%), 남성(15.4%)에 견줘 크게 높았다. 비정규직, 5인 미만, 20대, 여성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 신고보다는 퇴사를 선택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5인 미만 사업장은 가해자가 사용자나 가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개정해 강화된 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최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직장 갑질을 경험한 직장인 중 7.1%는 자해나 극단선택까지 고민했으며, 극단선택 경험은 5인 미만(15.8%), 20대(14.0%), 비정규직(10.3%)이 대기업(3.2%), 50대(2.9%), 정규직(4.9%)보다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의료적 진료·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결과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 10명 중 4명(41.1%)은 진료나 상담이 필요할 정도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그 뒤로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라는 응답이 37.5%, ‘진료나 상담을 받았다’는 응답이 3.6%로 이어졌다. 이를 전체로 환산하면 10명 중 1명은 ‘진료나 상담이 필요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도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은 법 시행된 직후인 2019년 9월 44.5%에서 2022년 12월 28.0%로 16.5% 줄었다. 그러나 괴롭힘 경험자 280명을 대상으로 괴롭힘 수준에 관해 물은 결과 ‘심각하다’는 응답이 44.6%로 2019년 9월 조사(38.2%)보다 6.4% 높아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이 지난 2019년 7월 시행되고 갑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괴롭힘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심각성은 여전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권두섭 변호사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이 줄었다고 응답하고 있다”며 “실제 제재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법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정서에 악영향 끼치는 ‘괴롭힘’

#3. 새마을금고에 다닙니다. 이사장과 전무의 업무 배제·무시·왕따·무시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습니다. 불안과 공포로 울면서 출근했고, 숨이 쉬기 어려워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고요. ‘죽으면 가해자들이 벌을 받을 수 있겠지’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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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시민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받은 영향으로는 ‘근로의욕 저하 등 업무 집중도가 떨어졌음’이 52.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직장을 떠나고 싶다고 느낌’이 45.0%,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인 건강이 나빠졌음’이 36.4%, ‘직장 내 대응 처리절차 등에 대해 실망감을 느꼈음’이 25.4%였다.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들에게 괴롭힘 행위를 한 사람을 물어본 결과, ‘임원이 아닌 상급자’가 37.1%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사용자’가 26.1%, ‘비슷한 직급 동료’가 18.9% 등으로 이어졌다. 응답자 중 ‘고객이나 민원인 또는 거래처 직원(6.8%)’과 ‘원청업체 관리자 또는 직원(3.9%)’ 등 10.7%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 행위자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직장인은 괴롭힘 행위자 중 사용자가 28.9%로 가장 많았는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신고할 수 없고, 사용자에게 과태료도 부과할 수 없으며, 괴롭힘으로 퇴사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삼중 차별’을 겪기도 했다.

괴롭힘을 당했을 때 대응 방법에 대해 물어본 결과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가 73.2%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개인 또는 동료들과 항의했다(23.2%)’, ‘회사를 그만뒀다(22.1%)’ 등의 의견(중복응답)이 높게 나왔다. 

반면 회사 또는 관계기관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6.8%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본 결과, ‘대응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가 68.4%로 가장 많았고, ‘향후 인사 등에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가 21.2%로 두번째로 많았다.

지난 2019년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 응답은 69.5%로 ‘모르고 있다’는 응답(30.5%)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정규직(76.7%)과 공공기관(76.9%)은 10명 중 8명이 법을 알고 있었지만, 비정규직(41.3%)과 5인 미만(44.4%) 사업장은 절반 가까이 모르고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일하는 직장에서 괴롭힘이 ‘줄어들었다’라는 응답은 61.2%로 ‘줄어들지 않았다(38.8%)’보다 높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용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92.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 간접고용(도급·용역·하청 등), 특수고용 근로자 등에게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적용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94.7%로 조사됐다.

현재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지난해 기준 378만명이다. 여기에 간접고용(347만명), 특수고용(229만명), 플랫폼 근로자(53만명) 등도 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권 변호사는 “아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사각지대로 남은 5인 미만 사업장, 원청 갑질,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일하는 곳이 어디든 지위가 어떻든 괴롭힘을 당하면서 일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7일부터 14일까지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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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시민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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