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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격동기 한국 경제발전을 이뤄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은 한강의 기적일 이뤄낸 인물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 2013년 세 인물의 일화를 극화한 ‘한강의 기적-박정희와 이병철, 정주영’ 연극 포스터. (출처: 뉴시스)

2023년 한국경제의 도전

세계사로 살펴보는 한국경제

근현대사 격동기에 발전 이뤄

위기 속 기회만들었던 기업

지도자기업가 한몸으로 움직여

내년 경기침체 적색등 켜졌는데

사분오열된 한국경제 구성원들

국가지도력기업노동자 협심해야

[핵심요약]

4차 산업혁명, 한국경제 현주소

한국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자리에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무인 자동차, 로봇, 우주항공 등 실제로 메타버스 시대에 진입하는 초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비전’ ‘혁신요구되는 한국경제

2023년 경기침체는 한국경제가 1960년대 이후 거쳐 온 역사 속에 경험하지 못한 위기수준은 아닐 것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추동력은 지도자의 직관과 비전에서 나온다. 기업가는 창의적 정신으로 혁신을 반복해야 한다. 진정한 경기침체 위기는 4차 산업과 5차 산업혁명에 뒤처지는 한국경제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려면 2023년 계묘년부터 내재적 갈등의 뿌리를 자르고, 원대한 신경제 시대가 시작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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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853년 페리제독의 강요로 개항을 한 지 7년 만이자 미국의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860견미단을 파견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187110개월간 미국과 유럽 등 12개국의 산업발전을 견학하는 이와쿠라 사절단을 보낸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시작이다. 이토 히로부미도 이 사절단의 대열에 있었다. 이보다 3년 앞선 18682월에는 초대 북경 공사였던 앤슨 벌링게임을 흠차대신으로 임명해 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했다. 가장 오래된 나라와 가장 젊은 나라의 만남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나무꾼 철종의 제위 막바지에 있었다. 이어 고종과 순종의 역사가 이어진다. 당시 조선의 절대적 대외정책 기조는 여전히 위정척사(衛正斥邪)’론이었다. 개국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합방 등으로 이어진다. 시대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 결과는 국가와 국민이 사라질 수 있다는 대한민국 역사의 막다른 골목까지 이르게 했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시대사조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이 같은 암울한 역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도자와 위정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도 여기에 있다.

역동적이었던 현대사 속 대한민국

근대사를 지나 현대사의 진입 과정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은 역동적이었다. 1960년대 빈곤 탈출의 기적은 산업화의 출발로부터 시작된다. ‘기적이라지만 우리 국민들이 일궈낸 경제발전이었다. 1964년 독일을 방문한 지도자는 두 눈에 흐르던 눈물을 훔치며 두 번 다시 가난한 나라를 후대에 물려줄 수 없다라는 말을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 한다. 산업화의 역동성은 고속도로, 제철, 조선 등 기간 산업 건설로 이어진다. 독일 아네나워 총리의 아우토반과 제철소 건설 자문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커다란 비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기업가들이 있었다. 60년대 말 시작한 고속도로, 제철소 및 조선소 건설은 70년대 초반 완공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의 위기는 중화학 공업 발전에 재정적 위기를 초래한다. 경공업 발전 이후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충분조건이었다. 하지만 중화학공업 발전은 자본 투자가 절대적이었다. 이 역시 중동건설 붐으로 풀어낸다.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중동에 부처 장관을 보내 의견을 들어보니, 장관들은 그곳은 덥고, 마실 물도 없고, 술도 못마시는 나라라서 일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한 기업가의 답변은 달랐다. 밤에 일하면 시원하고, 마실 물은 바닷물을 담수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되고, 술을 못마시니 월급을 고스란히 송금할테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논리였다. 중화학 공업의 발전은 우리 경제발전의 선순환적 성장을 위한 업그레이드된 산업구조를 구축하게 했다. 수출할 수 있는 제품들이 늘어났고, 수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됐다.

1980년대 한국경제는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한다. 1981년 반도체 산업 투자가 본격화된다. 1984년 대우통신의 광케이블 공장이 준공된다. 10년간의 반도체 투자는 1990년부터 본격화된 개인 컴퓨터와 인터넷 시대에 절묘한 타이밍을 맞추며 10년 성장의 기술적 개발의 토대가 된다. 64K D램은 미국과 일본의 기술을 습득한 것이었지만, 256K D램은 세계 최초 개발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광케이블 통신망을 갖춘 서울의 경쟁력은 이때 이미 시작됐다. 세계 최초의 기술 개발이 없다고 스스로 폄하할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다.

고민스러운 4차 산업혁명기의 한국

이제 한국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태동기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자리에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무인 자동차, 로봇, 우주항공 등 실제로 메타버스 시대에 진입하는 초기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2008년 골드만 삭스가 2050년 세계 3위 경제가 한국이라 했었다. 하지만 올해 발표된 자료에는 나이지리아에조차도 밀리고, 심지어 세계경제 1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가나야마 마스히데. 1968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부임한 2대 주한 일본 대사다. 당시 일본 총리는 사토 에이사쿠, 전경련 회장은 신일본 제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이다. 가나야마 대사와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포항제철의 기술 이전에 가나야마 대사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의 유골 일부는 경기도 파주 천주교인 묘지에 묻혀 있다. 가나야마 대사의 말이다.

일본은 미국, 영국, 러시아와 외교만 잘하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한국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하마다 시게타카, 삼성전자의 고문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반도체 시작은 어려웠을 것이다. 가나야마 대사와 하마다 고문이 한국의 잠재력을 평가한 말은 비슷하다.

이나야마 회장이 한국이 나사도 못 만드는데 무슨 제철인가!” 돈도 기술도 없는데 어찌 돕겠는가 하는 말이었다. 가나야마 대사는 일본도 1897년에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답했다. 결국 포스코는 포항의 모래 사장 위에 우뚝 서 있다. 하마다 박사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 성공은 리더십에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부정적일 때, 고 이병철 회장은 일본도 한 것, 왜 한국이 못하나라고 했고 결국 도시바나 히타치 등 한때 한국에게 반도체 기술을 가르쳤던 일본 기업들은 밀려났다.

기술과 자본 빅 데이터분석해야

14세기 이후 세계사가 종교 전쟁의 역사였다면, 이후 세계는 항해의 시대가 열리면서 무역이 지배하게 된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은 생산과 수송의 동력혁명이었다. 증기기관이 범선을 대체했고, 석탄으로 항해하던 무역선은 석유 내연기관으로 대체하면서 또 다른 세상이 닫히고 열리길 반복해왔다. 인류 산업기술 발전은 세계경제와 무역, 정치외교 등 각종 질서 변화에 단초가 된다.

이어 전기의 발명은 제3차 산업혁명의 출발이 됐다. 6G시대와 Web 3.0의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하지만 기술 발전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5차 산업혁명도 이미 시작됐다. 양자 물리학의 발전이다. 디지털 정보통신과 양자 역학의 기술 발전은 모두 미국과 유럽이 선두에 있다.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온 일본도 정밀 부품과 소재산업에서는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다.

미래 산업발전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자원 중 하나가 자본이다. 실물과 자본이 각각 따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자본이 실물경제를 앞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그랬다. 벤처와 스타트기업의 생멸도 같은 이치다. 자본과 기술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적 성격이 강하다. 자본과 기술은 공통된 하나의 특징이 있다. 기술과 자본 등 모든 생산과 관련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축적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빅 데이터.

2023년 경기침체 혁신’ ‘협력필요

왜 모두가 2023년에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할까? 경기침체가 올 때 우리에게 모든 걸 알려주고 온 적이 많았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몰래 다가왔었을까? 많은 경제학자들이 2023년 경기침체를 전망하지만 그 시기와 심각성에 대해선 각각 다르게 생각한다.

스위스 아시아 캐피탈의 키너(Juerg Kiener)는 경기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지속됨에 따라 2023년에 금 1온스 당 400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노동시장 강세와 양호한 가계 자산을 고려할 때 오히려 경기침체는 일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사실 2023년 경기침체는 한국경제가 1960년대 이후 거쳐 온 역사 속에 경험하지 못한 위기수준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경기침체 위기는 4차 산업과 5차 산업혁명에 뒤처지는 한국경제다.

0.7%대에 머무는 출산율도 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추동력은 지도자의 직관과 비전에서 나온다. 기업가는 창의적 정신으로 혁신을 반복해야 한다.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은 생산 제품의 혁신, 기술의 혁신, 원자재의 혁신, 조직의 혁신, 그리고 새로운 시장 개척을 말한다. 이러한 혁신은 정부와 국민의 절대적 참여와 지지를 갖춰야 한다.

미래를 바라보며 우주항공 시대를 생각한다. “달이 화성을 가기 위한 전초기지(base camp)”라는 말이 충격적이다. 이 게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술과 자본력을 누가 가지고 있을까. 그들과 깐부를 맺는 게 국가 이해관계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그 배움을 놓고 굴욕의 역사’, ‘이념 갈등과 투쟁의 과거에 함몰되는 것이 정의로울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려면 2023년 계묘년부터 내재적 갈등의 뿌리를 자르고, 원대한 신경제 시대가 시작됐으면 한다. 고속도로를 건설하자 할 때 삽을 들고 동참하지는 못할망정 불도저 밑에 드러눕는 과이불개(過而不改)’는 피했으면 한다. 어차피 역사의 일기장에는 진실이 기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용어설명]

오일쇼크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전쟁과 정치적 격변으로 세계 석유시장에 큰 혼란이 발생하였고, 이러한 혼란은 세계 경제 전체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197310월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사이에 소위 욤 키푸르 전쟁 발발로 석유 무기화가 이뤄져 국제 유가는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급등했는데, 이를 제1차 오일쇼크라고 부른다. 이후 1979년 이란 혁명 과정에서 석유 생산 중단으로 공급 차질이 빚어졌고, 19809월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국제 유가는 15달러 수준에서 35달러 수준으로 급등했고 이를 2차 오일쇼크라고 한다.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국제 유가는 단기간에 10배 이상 상승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의 일련의 경제위기 사건들로, 국제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을 불러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일으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상품으로 우리말로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다. 이 때문에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 등 대규모 투자은행이 줄줄이 파산하고 미국 금융권 전체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위태롭게 만든 금융위기의 불길이 전 세계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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