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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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여야는 우여곡절 끝에 밀실에서 합의를 해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 헌법 제54조 제2항에서는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국회는 이를 밥 먹듯이 기한을 넘기고, 심지어는 새해 벽두에 예산안을 통과시킨 적도 있었다.

헌법은 예산이 국가의 살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라는 표현으로 국정운영에 필요한 경비에 대해서는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할 수 있도록, 예산안이 제때 통과 못한 경우에 대비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헌법 규정을 보면 2달 동안 예산안을 심의·확정해야 함에도 정쟁을 일삼으며 헌법규정을 우습게 여긴 국회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내년도 예산안을 다루어온 국회의원들의 태도를 보면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정권 또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자 정당 노선에만 몰두해 국민의 대표라는 신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국회의원은 입후보해 당선되면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국민의 대표가 된다. 그런데 정당 소속의 대부분 국회의원이 정당을 대표하거나, 또는 그 하수인으로 본인의 신분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당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정당제 민주주의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각 정당이 정치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노선을 국민에게 주장해 지지를 얻고 국회의 의석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정당의 중요성 때문에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은 사적(私的) 결사체인 정당을 규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각 정당이 정당의 이익에만 몰두하게 되면 국정은 파행을 거듭하게 된다.

예산은 다음년도 국가 운영의 재정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 예산안을 짜는 것은 행정부이고, 이를 심의해 확정하는 것은 입법부이다. 이는 행정부가 나라 살림을 제대로 편성했는지 국회가 심의를 통해 하나하나 검토하고 확인하는 것으로 권력분립원칙에 따른 견제와 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국회는 행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에서 금액을 증가할 수 없고 새 비목을 설치할 수도 없다.

내년 나라 살림을 위한 예산안을 제대로 논의도 안 하고 정쟁에만 몰두하다가, 시간에 쫓기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국회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야의 두 당이 원내대표 담판으로 결정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모습을 보려고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국회를 구성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진지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인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 국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수의 보좌관을 거느린 일인군단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국회 내의 사무조직으로 입법조사처도 두는 등 온갖 수단을 부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의 복지시설이나 혜택은 세계 수준을 상회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갖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의식은 어느 나라보다도 부족하고 미흡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국회의 예산안 지연사태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2014년 개정 국회법인 일명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악의 지연사태라고 할 수 있다. 국회가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이 정부안에 대비해 국가채무를 줄였다고 하지만, 예산안 자체가 이미 적자 58조원으로 적자예산안이고 내년의 국가채무는 1100조원을 돌파한다. 이는 국가채무만을 말하는 것으로 공기업부채나 개인부채까지 합치면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경제가 위축되고 성장이 둔화되는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실패한 부동산정책으로 인한 부동산버블이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원자재값 상승과 수출둔화는 우리나라 경제에 직격탄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재정을 위한 예산안 편성과 확정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국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국정을 담당하고 있는 소위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가 저 모양이라면 국회의 존재 자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헌법과 국회법을 우습게 여기는 국회의원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도 못한 것이다. 국회는 헌법을 준수하는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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