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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새로 단장한 ‘과학문화’ 상설전시실 언론간담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2.12.26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고대부터 국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존재였다. 하늘의 뜻, 곧 천명(天命)은 국왕의 초월적 권위를 뒷받침했다. 동시에 하늘의 현상은 국왕이 통치를 올바르게 하는지에 대한 하늘의 신호였다. 조선시대에 천문학은 국왕의 학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늘의 뜻을 알려 백성이 농사를 짓고 생업에 힘쓰는 등 부국강병과 민생안전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조선 초기부터 국왕은 중국의 천문 과학기구와 역법을 연구하고 조선의 실정에 맞춰 쓸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다면 당시에 사용했던 천문학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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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12.26

◆국가 통치이념 ‘관상수시’

이와 관련, 국립고궁박물관은 ‘과학문화’ 상설전시실을 새롭게 단장하고 27일 첫선을 보인다. 전시는 ‘관상과 수시’라는 주제 아래 어려운 과학문화 유산의 의미와 작동원리 등을 쉽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조선시대 과학문화유산 총 45건(국보 3건, 보물 6건 포함)이 공개됐다.

전시에서는 국왕의 임무 가운데 으뜸인 ‘관상수시(觀象授時)’가 국가 통치 이념이자 수단이었음을 보여줬다. 관상수시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절기와 날짜, 시간 등을 정하며 널리 알리는 일을 말한다. 관상수시를 보여주는 대표 유물은 ‘혼천의’로, 고대부터 왕권의 상징물이던 천체관측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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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보물)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12.26

국립고궁박물관 김재은 학예연구사는 “유교 경전인 ‘서경(書經)’에 보면, ‘선기옥형(璿璣玉衡)’이라는 이름의 ‘혼천의’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으로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후 유교 정치에서 혼천의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제왕을 뜻하는 상징물처럼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통치자를 상징하는 북두칠성과 28수 별자리를 새긴 ‘인검(寅劍)’도 공개됐다. 논어(論語) 위정에 보면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북극성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뭇별들이 거기로 모여드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북극성을 통치자로, 일주운동을 하는 별들을 신하로 비유했다”라며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념이 담긴 것으로, 정치와 애민(愛愍)이 통한다고 보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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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와 절기 등이 적혀 있는 시헌서(1772년) ⓒ천지일보 2022.12.26

◆조선 기준의 역법과 역서 

이처럼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것은 연, 월, 일, 절기 등 시간의 질서를 얻기 위함이었다.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해 날짜를 정하는 수학적 이론이 역법이고, 역법을 적용해 매년 만드는 달력이 역서다. 

역법을 연구하고 역서를 편찬하는 것은 백성에게 하늘의 뜻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농경사회였던 조선 사회에서는 때를 맞춰 농사짓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국왕은 천체 움직임을 통해 절기를 파악하고 백성에게 알리기 위해 힘썼다. 관상감에서는 매년 역사를 편찬해 국왕에게 올리고 관료들과 각 관청에 나눠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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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이문원 측우대(국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12.26

김 학예연구사는 “과거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역법을 만드는 일과 역서를 편찬하는 것은 중국의 천자(天子: 옛 중국에서 주권자에 대해 부르던 별칭)에게만 부여된 권한이었고 다른 나라는 중국의 것을 받아들여 사용해야만 했다”며 “하지만 중국과 조선의 시차로 인해 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역법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세종대에 역법서인 ‘칠정산내편(1442년)’과 ‘칠정산외편(1444년)’이 편찬된다.

이는 당시 통용되던 중국 역법서인 수시력(授時曆)과 대통력(大統曆), 이슬람 역법서인 회회력(回回曆)을 완전히 이해하고, 조선의 실정에 맞는 시각법과 천체 운행 계산법이 정립된 역법서다. 특히 달력을 만들 때 기초적으로 사용되는 절기별 해가 뜨고 지는 시각, 밤낮의 길이, 절기 등이 조선을 기준으로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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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새로 단장한 ‘과학문화’ 상설전시실 언론간담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2.12.26

◆별자리 관측과 별자리 지도

계절마다 일정한 시간에 떠오르는 별자리를 파악하는 것은 천문 현상을 이해하는 기본이었다. 구형의 하늘을 만들고 그 위에 별자리 위치를 표현한 ‘천구의(天球儀)’, 평면에 하늘을 원형으로 묘사하고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는 별자리 관측과 이론적 탐구가 종합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지구본과 지도를 제작해 우리가 사는 땅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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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2.12.26

태조 대에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국보)’은  대표적인 조선 전기 천문도로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배열해 놓았다. 이는 태조 즉위 초인 1395(태조 4)년에 조선 건국 이전부터 전해지던 천문도 각석의 탁본을 구해 별자리 위치를 보정한 후 완성했다. 이를 통해 천문을 살피고 시간 흐름을 파악해 백성에게 알리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드러내려 했다. ‘혼상(渾象)’은 조선의 대표적 천구의로 세종 대에 제작됐지만 유물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김인규 관장은 “‘관상수시’는 고대부터 왕의 의무이자 권위였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 과학문화는 이념적이면서 실용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말했다. 이어 “박물관의 과학문화 전시 개편은 1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로,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해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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