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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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이일수록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론상으로는 가까운 사람을 잘 대해 줘야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가까운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많으니 당연할 수도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얼굴 한번 안 본 채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대에는 그런 사람은 없다. 대부분 연애를 통해 스스로 배우자를 정한다. 선을 보더라도 충분히 만나보고 결정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혼이 많아지는 것일까? 물론 그 시대의 이혼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개인적으로 중대한 결함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그랬다. 자립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니 온갖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혼인 생활을 유지했을 수도 있다.

필자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결혼식 날 처음 봤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함부로 대하기가 오히려 어려웠을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몇 개월, 몇 년을 지내다가 보니 습관이 됐을 수 있다. 

현대에는 알 만큼 아는 상태에서 결혼하다 보니 조심스러운 마음이 적다. 연애할 때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까지 더해져서 결혼 후 훨씬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최초로 계약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고,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자’고 약속했다. 그들은 연인이자 친구였고, 동지이자 스승이었으며, 경쟁자이자 공모자였다고 한다. 

그들은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 다니면서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1929년 둘은 수석(사르트르)과 차석(보부아르)으로 나란히 시험에 합격했다. 그럼에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특히 사르트르는 키가 158㎝로 보부아르에 비하면 머리 하나가 차이날 정도로 작았다. 더구나 4살 때에 독감에 걸려서 오른쪽 눈을 못 보게 돼 외눈이었고 외모도 볼품없다고 평가했다. 보부아르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은 여러 여자와 자고 싶다는 욕망을 솔직히 털어놓았으며 자신의 신조를 ‘여행, 일부다처, 투명성’이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에도 결코 좋은 신랑감은 아닌 듯했다. 

그들의 계약은 2년이었고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연장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쉽게 깨질 듯 보이는 조건의 이 결혼은 40년간 지속됐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계약결혼의 약속을 잘 지켜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둘 다 계약결혼의 조건에 맞는 연애를 했고 그런 내용을 무덤덤하게 대화나 편지로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원고를 가장 먼저 읽고 검토하는 사이였다. 

우리는 서로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상대를 함부로 대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2년 안에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서로에게 더 조심스럽고, 존중하는 마음도 더 컸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돌아보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가까운 사람이 행복할 때 자신도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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