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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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1. 철화분청자기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내가 찾아낸 4가지 형태소가 극명하게 표현된 계룡산 기슭 학봉리 가마터에서 작은 파편들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다. 허리를 펴고 동학사로 향했다. 정윤정님과 함께 갔는데, 상반신을 앞으로 굽히며 급히 나아가다가 두 번 쓰러졌는데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것이다. 내 제자는 놀라서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앉으란다. 아, 마지막 답사라고 생각하며 절망했었다고 했다.

가다가 내려서 가다가 다시 타고 가다가 지척에 있는 동학사에 들어서는데 불이문 현판은 나의 스승이었던 ‘여초(如初)’ 김응현 선생이 썼고, 범종각의 현판은 그의 형 ‘일중(一中)’ 김창현 선생이 썼으니 최근의 전각들임을 알겠다. 역사는 오래나 몇 번에 걸친 전쟁 중의 화재로 오랜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학봉리는 조선시대에는 동학동이라 불리어서 동학사와 가마터는 한 묶음이라 동학동이라 부르고 싶었다. 동학동 분청자기 가마터의 신비한 4가지 형태소가 동학사에서 풀릴 것만 같아서 동학사 가는 길을 재촉했었다. 그러나 아무런 실마리도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휠체어를 관람객을 위한 관리소에 반납하고 귀가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 4가지 형태소로 인류가 창조한 일체 조형예술품이 풀리는 분청자기 가마를 그래서 성소(聖所)라고 불러야 한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어찌하여 동학사 바로 옆에서 그런 분청자기가 만들어졌단 말인가. 분명히 동학사와 관련이 있으련만 실마리는 전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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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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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3. 물고기 입에서 제2영기싹 발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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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4. 보주의 영기화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제39회에 이어 동학동 분청자기 가마터에서 발견된 작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분청자기 병 표면에 그려진 그림은 매우 흥미롭다(도 1-1~1-4).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 입에서 제2영기싹이 발산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물고기의 입이 없는데 그 뾰족한 곳에서 제2영기싹이 발산하고 있다. 그런데 얼굴은 고사하고 세상에 이런 물고기는 없다(도 1의 영기문의 구성). 이 물고기는 현실에서 보이는 물고기가 아니다. 물고기는 용과 같은 ‘물’이란 속성을 지닌다. 용이 물이듯이 물고기도 물을 상징한다. 그래서 민화에서도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가 자주 등장하며, 물고기 입에서 용이 화생하는 그림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므로 물고기가 용보다 더 근원적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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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의 영기문의 구성 1. 세상에 이런 물고기는 없다. 龍(용)과 함께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 입에서, 제1, 제2영기싹 영기문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연이어 나올 수 있으나 끝에서 제2영기싹으로 마무리하여 그친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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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의 영기문의 구성 2. 양쪽으로 제2영기싹이 나오고, 그 갈래 사이에서 긴 보주가 생겨나고, 제3영기싹을 이루고 그 중간에서 다시 양쪽으로 제2영기싹이 뻗쳐나감.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그런데 그런 물고기에서 용의 입에서부터 발산하는 똑같은 제2영기싹이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기싹은 연이은 제1영기싹으로 나타낼 수 있으나 끝없이 나아갈 수 없어서 끝에서 제2영기싹으로 마무리할 뿐이다. 이 병의 다른 면에는 먼저 양쪽으로 제2영기싹이 나오고 그 갈래 사이에서 긴 줄기가 솟아 나와 끝에 보주를 맺고 있는데 줄기 중간에서 한 번 더 양쪽으로 제2영기싹이 좌우로 뻗어나가고 있다(도 1-4)(도 1의 영기문의 구성2). ‘보주’란 조형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 이 도자기 연재는 실로 이 ‘보주’라는 조형적 절대 인식을 위한 대장정이다. 이런 봉오리 모양의 보주는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것이라 이미 고려청자에서 다룬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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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1. 철화분청자기 장군의 놀라운 보주 화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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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2.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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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의 영기문의 구성. 활달한 필치로 위아래에 영기창(靈氣窓: 영기문으로 만든 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영기문이 전개한다. 좌우로 제2영기싹, 그 위로 다시 더 큰 제2영기싹, 그 가운데로 보주가 연봉처럼 표현됨. 그 양쪽은 보주를 감싸는 강력한 영기문을 두었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그러면 철화분청자기 장군을 채색분석하며 살펴보기로 하자(도 2-1, 2-2). 첫눈에 그리 눈이 끌리지 않는다. 그러나 필치가 굵고 힘차서 대담한 표현이다. 섬세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고려청자에 비하면 험악하게 보일지 모르나 이러한 철화분청자기야말로 세계 도자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작품들이다. 입을 중심으로 힘찬 영기문으로 영기창(靈氣窓)을 만들어 영기창 중심의 입에서 무량한 물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도공들은 알았을까?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찍을 당시 그 참뜻을 몰라서 위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전체적으로 더 큰 영기창을 표현하여 측면의 넓은 공간에 영기문을 전개시키고 있다. 밑부분에 제2영기싹이 좌우로 힘차게 뻗치고 있으며, 그 갈래 사이에서 긴 줄기가 솟아올라 보주를 맺고 있다. 그 줄기 중간에서 다시 한번 좌우로 제2영기싹이 더욱 힘차고 크게 뻗어나가고 있다. 줄기 맨 위에 맺힌 보주는 연봉오리 모양이다. 그 좌우로 흔히 연꽃잎 모양이 보주를 감싸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대담한 조형으로 감싸고 있다. 그 전개 방법은 앞서 분석한 철화분청자기 병에서 본 것과 그 전개 방법이 똑같다. 이 우람한 장군의 영기문은 무서울 정도로 대담무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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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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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2. 맨 밑의 영기문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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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3. 보주의 영기화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다음에는 학봉리 가마 발견품은 아니지만 영기문의 전개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분청자기여서 함께 다루어보고자 한다(도 3-1). 맨 밑부분에는 연꽃잎 모양의 영기문이 있다(도 3-2). 고려청자에서 이미 이 영기문에서 도자기가 화생한다고 누누이 설명한 것처럼, 여기에서 분청자기 전체가 화생한다. 그다음 자기 중간 부분 넓은 공간에 양쪽에 이중으로 연잎 모양 영기문이 나오고 그 중간에서 긴 줄기 끝에 보주가 맺히고 있다(도 3-3). 이러한 조형은 앞서 분석하며 설명한 두 학봉리 철화분청자기의 보주 표현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앞의 예는 제2영기싹이 좌우로 이중으로 뻗어나가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제2영기싹 대신 영기화시킨 연잎 모양이 이중으로 있다는 차이뿐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보주의 영기화생>이라 부를 수 있는 매우 고차원의 조형들이다. 이처럼 도공들은 영기문의 전개원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창조적인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지 아무렇게나 그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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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4. 연이은 제3영기싹 영기문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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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3의 영기문의 구성. (왼쪽 위) 맨밑의 연꽃잎모양에서 분청자기가 화생. (왼쪽 아래)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에서 그 끝을 다시 제2영기싹을 마무리지으면 전체가 자연히 연이은 제3영기싹 영기문이 된다. (오른쪽 위) 연잎모양을 영기문으로 표현. (오른쪽 아래) 붕긋붕긋하게 하거나, 역으로 붕긋붕긋하게 표현한다. 두 갈래의 연잎모양 영기문 사이로 연꽃이 피어오르는데, 보주와 제3영기싹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천지일보 2022.12.16

입 주변의 영기문을 분석해보자(도 3-4, 및 채색분석한 도 3의 영기문 구성원리). 제1영기싹이 연이어 전개하고, 그 끝은 제2영기싹으로 마무리하고 있으며, 제3영기싹이 자연히 생겨난다. 그러므로 제3영기싹 영기문에는 제1, 제2영기싹 영기문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실은 제1영기싹만 다룰 수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당초문 혹은 덩굴무늬라 부르고 있으니 어찌하랴. 이 작품은 영기문의 필수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함께 다루어보았다.

이렇게 계속하여 철화분청자기를 채색분석해 가면서 설명해 가노라면 이렇게 일관된 영기문 전개 원리를 조금도 벗어나는 예가 없어서 놀랄 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세계 도자기에서 이처럼 분명하고 명쾌하게 영기문의 핵심만을 표현한 작품을 어느 나라 도자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룰 중국 신석기시대 채색도기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너무 멀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독자적 창작품이라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영기문, 4개의 형태소의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기적 같은 일이다. 앞으로 좀 더 철화 분청자기들을 채색분석해 보며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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