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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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阿Q正傳)은 루쉰 필명을 가진 사람의 중편소설이다. 루쉰은 중국 근대문학의 창시자라고 칭송받는다. 55세에 죽기까지 32편의 단편소설과 1편의 중편소설을 남겼다. 작가라면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니다. 1881~1936년 생애가 그의 작품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기에 당시 중국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 

중국은 강대국들에 의해 식민지가 될 백척간두의 처지였다. 그야말로 국가는 본연의 역할을 못했다. 민중의 삶은 피폐 일로였다. 그나마 1911년 신해혁명 쑨원 중심으로 근 300여년 지배를 했던 만주족 청나라라는 구체제를 타파하고 중화민주제국을 건설해 민주, 민권, 민생을 외쳤다. 이것마저 1년여 지나 무위로 돌아간다.

당시 루쉰은 국비로 일본에 유학을 갔었다. 1904년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이다. 아버지도 폐병으로 돌아가셨고 해서 의학을 배워 몸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자 했다. 그것도 잠시 강의 시간 중 중국인 처형 장면 영화를 보고 분노하고 학교까지 자퇴한다. 귀국 후 문학을 통해 중국 민족계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양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했고 청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제가 설립되자 교육부에 들어가 관리 생활도 했다. 

신해혁명 후 국민당의 쑨원과 공산당의 마오쩌둥의 내전이 격화될 때 1927년 광저우에서 국민당의 대학살을 목도한다. 일명 4.12대학살이다. 다소 모호했던 스댄스를 완전히 좌익으로 틀었으며 마르크스 이론까지 섭렵한다. 1930년에는 중국 좌익작가연맹에 가담하기에 이른다.

마오쩌둥은 루쉰을 위대한 민족주의자,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로 만듦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아Q정전에 대해 극찬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 교과서에 실리게 된다. 이 작품은 그가 1921년 신문에 기고하기 시작해 1923년까지 연재된 것. 중편소설로 편집해 출간하게 됐다.

신문 연재 시 적지 않은 중국인에게 많은 공감을 줬다. 국가가 사분오열되고 서양 강대국들의 침탈야망이 극에 달했음에도 아Q라는 일반 중국인을 등장시켜 비록 소설이지만 그의 모순적 태도가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한 중국이 그 순간에도 ‘중국의 정신문명이 세계제일’이라고 믿고 있는 중국인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큐의 정신승리법은 중국인의 자존심을 그리기도 하고 비굴함을 대변한다. 동네 건달들에게 맞고서는 “자식에게 맞은 것으로 치자”라고 스스로 합리화도 시킨다. 웨이좡 마을의 자오 어른에게 따귀를 맞는다. 마을 사람들은 아큐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큐를 한때 존경하고 경외한다. 높은 사람에게 맞았다고 경외한다. 루쉰은 이런 모습을 통해 ‘중국인들의 노예근성’을 가차없이 지적하고 비판한다. 건달들에게 맞고서는 약한 비구니를 찾아가 얼굴을 꼬집고 희롱한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중국인의 자화상을 풍자한다. 

지금 중국에 아큐가 없을까. 중국인 의식 기저를 제 각도에서 심오하게 살피고 대응함이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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