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건설·부동산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통하는데 기본적으로 빠질 수 없는 용어다. 생활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주제로 등장하는 등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로 다뤄진다. 또한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건설·부동산 소식을 메인 뉴스로 접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삶의 일부인 셈이다. 

본지는 건설·부동산과 관련한 이슈를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담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전체 사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건설맥짚기] 기획을 연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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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층 모듈러 건물인 영국 런던의 ‘101 조지 스트리트 타워(George Street Tower)’의 공사 모습. 최고 44층, 135.6m 높이로 총 1526개의 모듈 유닛을 현장 설치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듈러 빌딩이다. ​​(출처: Tide Construction)

 

레고처럼 빠르고 튼튼하게

경제·내구성 충족에 수요 늘어

국내선 12층 이어 13층 도전 중
 
사우디 빈살만도, 한국업체에 러브콜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 줄지어 참전
정부, 5년간 270만 모듈러 주택 공급
 
학부모들 외면 받으며 ‘찬밥’ 되기도

 

[천지일보=이우혁, 조성민 기자] 공사 속도가 빠르고 튼튼한 주택을 짓는 공법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인건비가 오르고 금리상승으로 인한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경제성에 대한 필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앞선 기사(“두껍아 ‘헌 法’ 줄게 새 집 다오”… 건설업계 ‘3D 프린팅’ 어디까지 왔나)에서 다뤘던 3D 프린팅 기술처럼 신기술로 각광 받는 공법이 있다. 바로모듈러 공법이다.

국내 시장에선 모듈러 기술에 대한 인식이 냉랭하다. 하지만 해외에선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대규모 수주와 관련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국내에서 ‘미운오리’ 취급을 받는 모듈러 공법 시공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국서 44층 타워 ‘9개월 만에’ 완공

모듈러 공법이란 건물을 조립한다는 측면에서 마치 레고와도 같다. 공장에서 건축 모듈을 80%이상 제작하고 현장으로 운반해 마치 레고처럼 쌓아 올리는 식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도 레고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건축 난이도가 쉬워지는 것도 장점이다.

공기 단축이 가능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터파기’다. 기존 공법은 터파기를 마친 후 건물을 짓지만 모둘러 공법은 이 둘을 병행한다. 현장에서는 터파기를 하고 동시에 공장에서 모듈을 만들어 공기를 단축시키는 셈이다. 

또 공기가 줄면 소음이나 미세먼지도 줄고 필요한 부품만 적정량 생산해 쓰면 되기 때문에  낭비되는 자원도 줄일 수 있다. 탄소중립과 친환경이 각광받는 오늘날, 건설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아울러 공장에서 만들어 비나 눈, 폭염이나 한파 등 날씨 영향을 덜 받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또 공장에서 생산된 모듈을 자동차처럼 배에 실어 해외에 수출도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세계 각국에선 건설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공기가 줄어든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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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A&C의 모듈 공법 개념도 (출처: 포스코A&C)

세계최고층 모듈러 건물은 영국 런던에 있는 ‘101 조지 스트리트 타워(George Street Tower)’다. 해당 건축물은 높이 135m(44층)을 9개월 만에 완성해 지난 2020년 모든 과정을 마쳤다. 또 미국 뉴욕 맨해튼에선 26층짜리 모듈러 호텔이, 중국에선 30층 이상 조립식 호텔이 각각 지어졌다. 

미국 뉴욕에 50층 모듈러 빌딩 설계에 착수해 조만간 착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10년 이내 모듈러 공법으로 100층 마천루가 등장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배규웅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박사는 모듈러 공법을 두고 “기존 공법 대비 40~50% 정도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며 “한 층 또는 한층 반을 하루 정도에 쌓기 때문에 건축 과정이 굉장히 빠르다. 즉 공기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3시간 이상’ 내화기준 문턱 넘어야

세계에서 모듈러 공법이 주목 받는 가운데 국내시장은 어떨까. 국내에선 엄격한 기준 탓에 층수는 낮지만 화재 등 안전성이 우수한 모듈러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최고층 모듈러 건물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직원생활관(12층)이다.

배규웅 박사는 “국내에서도 모듈러 건물을 20~25층 이상 지을 수 있다”며 “다만 건물의 층수가 높아질수록 더 엄격한 기준에 제제를 받는다”고 말했다. 

엄격한 기준 중 하나는 바로 ‘내화기준’이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불이 나도 13층 이상의 건물은 3시간 동안 주요 구조부가 열에 견뎌야 한다. 내화재인 철근콘크리트(RC) 건물과 달리 철골구조(SC) 기반의 모듈러 건물은 보와 기둥에 내화 뿜칠(내화재 덧칠) 또는 방화석고보드를 덧붙여서 내화구조체로 만들어야 한다.

배 박사는 “3시간 동안 불이 나도 내부에 있는 기둥과 보는 버텨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며 “내화 3시간 기술은 중요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 내화기술이 적용된 국내 최고층인 13층 모듈러 건물이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이다. 최근 착공한 현장에서는 국내 모듈러 건축기술을 총망라했다. KCC가 방화석고보드 3겹을 부착해 보·기둥의 3시간 내화구조 기술을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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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건설이 개발한 스틸모듈러 구조접합 기술인 ‘원터치 결합 방식의 퀵커넥터’ 상세 및 단면. (GS건설 제공) ⓒ천지일보 2022.12.02

◆BIM부터 원터치 커넥터까지 신기술 적용 

내화 기술 외에도 모듈러 공법에는 다양한 기술들이 사용된다.

먼저 건설정보모델링(BIM)을 활용한 가상 제작·조립과 정교한 수량산출이 필수로 꼽히고 있다. 모듈러 한 개가 풀옵션 원룸 하나를 공장에서 통째로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기존 2D 수량 산출과 동일한 정확성을 제공하면서도 설계변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연우테크놀로지의 ‘iBIMS’ 기술 등이 있다.

모듈러 공장과 현장을 잇는 ‘운송기술’도 중요하다. 모듈러 주택은 내외장재가 모두 장착된 채로 공장에서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송 과정에서 충격저감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자칫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는 모듈 유닛이 생겨나게 된다. 즉 택배과정에서 물건이 파손되는 것이다. 

건설기술연구원과 금강공업에선 모듈러 운송 ‘충격저감장치’를 개발, 차량에 탈부착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개발사에 따르면 일반 운송 차량보다 42∼65%의 진동저감 효과를 자랑한다.

이 밖에 GS건설은 모듈러를 결합하는 구조접합부에 적용되는 ‘원터치 결합 방식의 퀵커넥터’를 개발했다. 기존에는 각 모듈을 연결할 때 고력볼트로 접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작업자가 직접 현장에서 볼트 조임을 해야 하고 볼트 접합 후 점검부 마감을 현장에서 추가로 해야 해 시공성이 좋지 않았다. 

GS건설에 따르면 자체 무게에 의한 원터치 결합 방식으로 현장에서 추가로 조임 작업이 필요 없다. 이로써 현장공정을 줄여 안전과 품질은 향상시키면서도 제작기간까지 줄여 경제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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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신도시 네옴시티. (출처: 연합뉴스)

◆네옴시티에 ‘K-모듈러’ 1만 가구 짓는다

이렇듯 국내 K-모듈러 기술이 우수하다는 건 사우디까지 입소문이 났다. 지난달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이 포스코건설과 협력해 네옴시티의 40억 달러(한화 약 5조 2000억원) 규모 주택 사업을 수주할 전망이다. 네옴시티에 가장 먼저 조성되는 1만 가구 규모의 임직원 숙소를 모듈러로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빈 살만 왕세자가 네옴시티의 빠른 완공과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어 공사 기간 단축이 가능하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 효과가 큰 모듈러 공법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네옴시티의 모듈러 주택 프로젝트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파트너사와 사업 규모 등은 현재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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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건설이 용인기술연구소에 설치한 스틸모듈러주택 내부 전경. 모듈러 접합부에는 마그네틱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제공: GS건설) ⓒ천지일보 2022.12.02

◆“국내시장 10년간 15배 성장 예상”

이 같은 수주에 힘입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도 향후 10년간 15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오는 2030년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최대 2조 220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 규모가 1457억원이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10년 동안 15배 이상 성장한다는 얘기다.

중소형 제작 업체들이 주를 이루던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에는 포스코 그룹사 포스코A&C를 시작으로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등이 줄줄이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향후 5년간 270만 가구의 주택 공급을 내걸며 모듈러 공법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를 통해 모듈러 주택 공급도 늘리는 추세다. 지난 11월 초엔 LH·계룡건설이 가구 수(416가구) 기준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세종 통합공공임대 모듈러 주택을 발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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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이 상복을 입고 모듈러 교실을 반대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상복까지 입고 ‘모듈러 OUT’ 학부모들 ‘불안’

하지만 국내 모듈러 공법의 현실은 참담하다. 일례로 ‘모듈러 교실’을 들 수 있는데 모듈러 교실은 아직도 학부모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모듈러 교실 설치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등교 거부 사태를 발생시켰다. 이에 교육청은 모듈러 교실 밖에 대안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발단은 교육청이 모듈러 교실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오는 2023년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돼 초등학생이 최대 1200여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자 교육청은 모듈러 교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학부모들은 많은 학생이 추가로 들어오면 학습권이 침해되고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과 비교해 위험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모듈러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아이들의 아토피를 유발할 수 있다”며 “화재와 지진 같은 비상 상황에서 아이들이 대피할 수 있는 통로들도 부족하다. 또 모듈러 교실은 소음과 진동·방음·환기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육청에 서둘러 일반분교를 짓고 그때까지 아이들을 주변 초등학교에 분산 배치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충북 청주의 한 학교에는 조화가 늘어서기도 했다. 청주 교육청이 늘어나는 입학생 수에 모듈러 교실을 짓겠다고 하자 벌어진 광경이었다. 학부모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모듈러 OUT’이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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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모듈러 교사 체험관 점검하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출처: 연합뉴스)

◆2세대 ‘서울형 모듈러 교실’로 오해 풀기도

반면 모듈러 공법에 대한 오해가 풀린 사례도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이른바 ‘2세대 서울형 모듈러 교실’이 공개됐다. 학부모들의 모듈러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창고 같던 모듈러 교실이 업그레이드를 거듭해 ‘미래교실’ 수준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해당 교실은 바로 옆 학교 건물과 차이가 없다. 내부 시설로는 ▲공기청정기 ▲바닥열선 ▲냉난방시설 ▲실내체육시설 ▲AI교구가 준비됐다. 또 화재에 대비해 스프링클러를 1층부터 모든 층에 설치하고 교실별 비상구도 추가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실 공사 기간에 학습권이 전혀 침해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정재욱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임시사용 건물이라고 해서 소방시설에 차이가 있다고는 볼 수가 없다”며 “모듈러가 해외에서도 학교나 기숙사, 호텔같이 같은 모듈이 반복되는 건축에 많이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 말처럼 호텔 체인으로 유명한 ‘메리엇’은 앞으로 지을 호텔은 모듈러 짓겠다고 발표했고 ‘힐튼호텔’도 그 뒤를 따를 예정이다.

한편 서울시 교육청은 앞으로 1년간 체험관을 운영하면서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 모듈러 교실을 추가로 보완해 낡은 교실 정비사업을 본격화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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