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언어의 4가지 형태소 정립
제 1•2•3영기싹 그리고 보주
세계 모든 예술품. 같은 조형언어

글.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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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좌우로 전개하는 연이은 제1영기싹과 제2영기싹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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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중층으로 표현한 연이은 1영기싹과 제2영기싹 문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천하제일 고려청자를 1년 넘어 연재하면서 문양들이 오히려 주체(主體)이며, 문양에서 도자기 형태가 생겨났고, 도자기가 만병(滿甁)이며 즉 보주(寶珠)임을 역설해오면서 도자기 표면에 장식했던 문양의 중대함을 증명해왔다. 그 근거는 실은 계룡산 동악사(東鶴寺) 근처 학봉리(鶴峯里)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수습되거나 발굴된 도자기에서 세계 최초로 찾아낸 조형언어가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조형언어의 대향연이 베풀어지려 한다. 지금 조선시대 ‘철화 분청자기’의 문양이 내가 찾아낸 조형언어와 무슨 관계에 있는지 쓰게 되어 마음이 설렌다. 도자기 연구의 혁명적 계기를 마련하는 만큼 정교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고려청자와 조선 청화백자의 중간에 자리 잡은 분청자기의 중요성은 실로 말할 수 없이 커서 그 전후의 고려청자와 청화백자가 모두 풀린다. 

고려청자와 조선철화백자의 복잡한 영기문(우리가 문양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조형이 영기문)을 단순화시킨 것이 조선 철화분청자의 영기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히 고려청자와 청화백자 사이에서 짧은 시기, 약 150년 동안 제작되어 양자의 과도기적 존재로 낮추어 ‘자기’가 아닌 ‘사기’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특히 조형언어를 알지 못하여 풀무늬(草文) 혹은 당초문(唐草文)이라 부르고 있으니 분청자기의 매우 큰 존재이유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 연재는 세계의 수백만 도자기 전공자들에게 던지는 막중한 화두이며, 건축이나 조각 그리고 회화와 어깨를 견줄 만큼 중요하고 독자적인 위상을 회복하는 작업이며, 오히려 도자기에서 건축이 생겨나고 여래와 보살이 생겨나는 가장 드높은 근원적인 위상을 회복하려는 나의 노력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게끔 광고 없이 신문의 전면을 주저치 않고 내주신 천지일보 송태복 편집국장님께 고마운 마음 전해 드린다. 연재의 중요성을 동감하고 필자에게 무한 신뢰를 주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친 전무후무한 대장정의 연재를 허락한 것은 어느 신문사도 기획할 수 없는 모험이기도 하다. 이제 연재의 절정에 이르러 내 이론의 정확성과 채색분석의 위력을 새삼 확신하게 되어 가슴에 전율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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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언어의 형태소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2006년 초여름 7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봉리 가마터에서 수습된 분청사기 파편들을 소규모로 전시했을 때 전시품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그리고 보주 등을 찾아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최근이 일이다. 

즉 조형언어의 4가지 형태소(形態素)로 정립되었다는 진리를 더욱 재확인한 것은 최근 무본당(務本堂(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의 堂號)에서 <인류조형언어학개론>이란 이름으로 강의한 지 1년 가까이 되어가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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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 제1영기싹과 제2영기싹의 전개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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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연이은 제1영기싹, 제3영기싹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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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연이은 제1영기싹과 제3 영기싹 문양의 전개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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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6. 제2영기싹과 보주문의 복합 문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학봉리 분청사기에서 보주를 알아보았던 것은, 바로 직전 2005년에 그리스 첫 여행에서 신전 폐허에 흩어진 건축 부재 파편들에서 서양 학자들이 달걀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주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다. 즉 제1, 제2, 제3영기씩 영기문은 이미 2005년경에 알았으나 보주를 알게 된 것은 그 이듬해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일 학봉리 분청자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세계를 향하여 그다지 자신만만하게 사자후(獅子吼) 아닌 용후(龍喉)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는 마음으로 세계의 수많은 학회에서 발표하거나 강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오류가 있는지도 아무도 몰랐기에 그런 나의 노력은 바위에 달걀 던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바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지 않느냐. 조형언어로 도자기의 원류와 상징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를 계기로 건축, 조각, 회화 등, 모든 장르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고, 더 나아가 세계 미술, 더 나아가 인류가 창조한 일체의 조형예술품을 모두 해독하고 모두 새로이 해석할 수 있게 되어 관련 저서 출판을 재촉하고 있다.   

학봉리 분청사기를 처음 대면하면서 감격한 것은 내가 찾아낸 형태소 4가지가 분명하고, 그 4가지 형태소를 가장 간결하고 힘차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태소(形態素)는 언어학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내 나름의 조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4가지 형태소가 마치 내가 매일 백지에 실험적으로 그려온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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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언어의 전개 과정. 도 1부터 도 4까지 다루었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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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언어의 전개 과정. 도 5와 도 6을 다루었다.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2.12.01

내가 분청자기에서 찾아낸 것이 아니라, 이미 찾아내어 정립하여 놓은 상태에서 보고 놀랐던 것이다. 만일 그 상태가 아닌 때에 분청자기를 보았다고 하면, 철화 영기문을 보고도 무엇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도자기 연재를 꿈꾸기 시작했다. 학봉리 철화분청자기들 가운데 우선 제1영기싹 영기문만을 다루어 그 조형언어를 그려서 전개 과정을 보여드릴 것이다(도 1~도 6). 이미 고려청자들을 다룰 때 조금씩 제시했던 조형언어다.

조형언어를 발견했다는 것은 만물생성의 근원들을 찾아냈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 앞에 펼쳐진 영화된 세계를 체험했다는 의미다. 아직 아무도 영화된 세계를 체험하지 못한 세계여서 낯설지 모른다. 영화된 세계를 체험하지 못하고 조형언어를 해독하지 못하니 지금 우리가 무슨 오류를 범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무도 <하나의 잘못된 용어>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알고 보면 모든 종교가 각각 나름의 세계관과 우주관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 <영화된 세계>는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지극히 본질적인 세계인 것을 알았고, 다만 말만 다를 뿐임도 알았다. 

문자언어는 지역에 따라 민족에 따라 시대에 따라 모두 다르지만, 조형언어는 저 구석기 시대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의 조형예술품에서 똑같이 시용하고 있음을 역시 처음으로 증명하였으니 놀라는 까닭이다. 말 그대로 무상평등의 세계이다. 그래서 나는 오류투성이인 역시적인 문헌기록이나 오류의 축적일 따름인 연구성과를 기록한 모든 관련 논문들을 읽지 않고, 인류가 창조한 조형예술품을 해독해서 새로이 해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 계룡산 학봉리 가마터를 동학동(東鶴洞)이라 불렀던 것은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알 수 있다. 2022년 11월 29일, 도자기 가마터 성지(聖地)를 탐방했으며 지척에 있는 동학사(東鶴寺)에 가서 오체투지했다. 동학동의 철화분청자기 가마터를 동학사와 하나로 묶어 성지라 부른 까닭은, 그로 인해 세계미술품을 채색분석해서 알아낸 조형언어를 재확인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인류가 창조한 조형예술작품 일체를 해독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계 도자기 일체가 그 비의(秘儀)를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조형언어를 강력한 철의 짙은 갈색으로 표현한 철화(鐵畵)는 누가 그렸을까? 도공들이 그릴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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