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 ,백혈병에 상하이서 별세
덩샤오핑 사망과 동급 예우
“추모에서 시위로 이어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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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15년간 중국을 이끌었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30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70주년 기념식을 위한 국경일 열병식이 시작하기 전 톈안먼 광장에서 시진핑 주석(왼쪽)이 장쩌민 전 주석(가운데)과 리커창 총리 옆에 서 있는 모습이다. 

[천지일보=방은기자]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반정부 시위가 촉발한 가운데 개방정책을 펼쳐 중국의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다. 일각에서는 추모에서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사망했다고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30일 낮 12시 13분 장 전 주석은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등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장 전 주석은 백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장기 기능이 쇠약해져 응급처치했으나 이날 숨을 거뒀다. 중국은 30일 사망한 장쩌민 전 국가주석에 대해 1997년의 덩샤오핑 사망 때와 동급으로 국가적 예우를 갖췄다고 홍콩 신문 명보가 1일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장쩌민 전 주석에 대해 “당·군대·각 민족 인민이 공인한 탁월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30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 주석 겸 인민혁명당 총서기를 만난 자리에서 “장쩌민 동지가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늘 상하이에서 서거했다”며 “우리는 장쩌민 동지를 추모하고 슬픔을 역량으로 만들어 20차 당 대회의 안배에 따라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진하기 위해 단결 분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전 국가 주석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온라인 사이트들은 일제히 흑백화면으로 전환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중국 국무원과 외교부 등 주요 정부 기관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관영 매체 홈페이지들은 컬러화면을 흑색으로 바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전 주석의 죽음이 시진핑 주석의 가혹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대한 비판과 이에 따른 시위에 더욱 불을 당길 수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엄격하고 독재적인 현 지도자 시진핑 주석은 96세의 나이로 사망한 장 전 주석의 애도를 주재해야 하는 동시에 엄격한 코로나19 규제에 대한 광범위한 시위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 최근 시진핑의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는 과거 1990년대 장쩌민 전 주석 치하에서 보였던 정치적 자유화의 길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이 장쩌민 전 주석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그가 시진핑 주석의 정치에 반대하는 상징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고 외신은 전했다.

인민일보의 1면은 “무거운 마음으로 장쩌민 동지를 애도하며 우리의 슬픔을 힘으로 바꾸겠다”는 문구와 함께 장 전 주석의 죽음에 대한 애도 기사와 그의 초상화를 내걸었다.

이에 중국을 연구하는 토론토 대학교의 정치학자 리넷 H 홍(Lynette H. Ong)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지도자를 언급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은 잠재적으로 더 많은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최소한 국민들이 모여 애도할 정당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전 주석의 사망 발표는 거의 즉각적으로 중국인의 온라인 추모를 불러일으켰다. 상당수가 검열과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권위주의적 정책을 가진 시진핑 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을 냉소적으로 비교했다.

중국의 소셜 미디어 서비스인 웨이보(Weibo)에 올라온 한 댓글은 1998년 장 전 주석이 메가폰을 사용하여 구조대원들에게 홍수 방지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것을 촉구했을 때를 회상했다. 누리꾼들은 당시 중국 사회가 “활기차게 전진하고 의기양양하게 노래하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장 전 주석은 1989년 유혈 진압으로 막을 내린 톈안먼 사태 이후 국가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의 눈에 들어 덩의 후계자 자리에 올라 1993년부터 10년간 중국 국가주석으로 재임하며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장 전 주석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준 것을 시작으로 다음 해 3월 국가주석직을 이양했지만, 2004년 9월까지 권력의 핵심이라고 평가받는 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유지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톈안먼 사태라는 격동을 거쳐 최고 지도자에 오른 고인은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의 원만한 관계 속에 중국의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가 당 총서기가 된 1989년 1조 7200억 위안(약 319조원)이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그의 실질적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약 7배인 12조 1700억 위안(약 2260조원)으로 중국 경제는 고속 성장했다. 또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홍콩(1997년)과 마카오의 반환(1999년)이 그의 임기 동안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치적과 반대로 민주화 운동가들과 파룬궁에 대한 탄압 등 인권 침해 관련 지적과, 그의 재임 기간 경제성장의 뒷그늘에서 심화한 빈부격차와 관리들의 부정부패 등은 여전히 비판의 소재가 됐다. 그는 2019년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 등장한 것을 마지막으로 외부 공식 활동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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