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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첫 대면 회담을 진행한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두 정상은 경제 정책·대만 문제 등을 놓고 대립했지만, 대화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출처: 로이터, 연합뉴스)

 

동용승의 글로벌 경제안보 분석
‘지정학’의 중요성
미중, G20서 입장차만 확인
우국 탈동조화 경계하는 미국
중국 ‘경제’ 네트워크로 공략
독일‧프랑스‧사우디‧베트남
지정학 활용 독자노선 걸어
한국, 중국 정책 변화에 촉각

[핵심요약]

◆미-중 패권 전쟁의 핵심 ‘지정학’

미국은 누적된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는 반면, 중국은 경제(돈)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한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양국의 패권을 향한 거대 게임(Great Game)이 본격화되고 있다. 여기에서 ‘지정학(Geopolitical)’적 중요성을 절감한다. 

◆“한반도 지정학적 가치 활용해야”

시진핑 정권 1기 당시 중국은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보였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첫 방문지를 북한이 아닌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중국은 북한편, 미국은 한국편이라는 기존의 지정학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한국의 성장과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역으로 해석해 보면 한국 역시 지정학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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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

지난 11월 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기간 중에 미-중 정상이 만났다. 정상의 자리에선 첫 대면 회담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선전하며 한숨을 돌린 상황이었고, 시진핑 주석 역시 당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은 직후이므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3시간이 넘는 회담 동안 양국 간의 이견을 좁히기 보다는 차이를 명확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교차점 없는 미중 패권

뉴욕타임스(NTY)는 “결정적인 결전보다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했지만, 서로의 충돌점과 건드려서는 안 되는 지점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미-중 대결의 결전장이 보다 선명해진 듯하다. 다만 경제문제, 기후문제, 식량수급 등 긴급한 글로벌 현안을 풀어나갈 책임을 공유하고 소통 창구를 유지한 점은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양국의 정상들은 탈동조화(디커플링)를 막기 위한 숨 가쁜 정상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기편 줄 세우기에 주력하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평화‧인권을 내세우며 동북아의 한국과 일본, 태평양의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및 유럽 지역 국가들이 협력구조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각국의 정상들에게 지역 현안의 협력을 내세우며 대중국 협력구조의 탈동조화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기존의 경제적 연계성에서 나타나는 탈동조화 현상을 경계하고 나섰다. 중국경제는 이미 세계경제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데 중국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경제적 연계에서 벗어나도록 강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미국은 누적된 네트워크를 유지하려는 반면, 중국은 경제(돈)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한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양국의 패권을 향한 거대 게임(Great Game)이 본격화되고 있다. 

◆양극 패권 속 대두되는 ‘지정학’

여기에서 ‘지정학(Geopolitical)’적 중요성을 절감한다. 지정학적 측면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주기는 길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천년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현안 문제에 대처할 때 간과하기 쉽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이 미-중 경쟁을 거대 게임이라고 칭하는 것은 지정학적 영향력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는 가운데, 러시아에 에너지를 전적으로 의존해 온 독일의 어려움은 유독 심하다. 국내외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1월 4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비록 회담의 내용은 중국의 팽창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듯하지만 결국 기존의 경제적 이익을 지켜나가자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중국 일대일로의 유럽지역의 종착점은 독일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연대성을 강화하는 작업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패전국 독일(서독)을 유럽의 수문장으로 활용했다. 전후 유럽의 경제 부흥을 위해 마셜플랜을 전개했지만, 실질적으로 서독경제를 재건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미국과 독일의 동맹은 굳건했지만, 이제 미국은 독일의 디커플링을 경계하게 된다. 특히 트럼프 전 미대통령이 독일, 일본, 한국, 사우디를 지목하며 더 이상 무임승차는 없으니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변했던 것을 독일은 기억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프랑스는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걸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자 노선 찾아나선 각국 외교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의 행보도 흥미롭다. G20 기간 중에 한국을 방문한 빈 살만은 한국의 주요기업들과 수십조원에 달하는 투자의향서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빈 살만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G20 회담 중에 귀국한 듯하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그만큼 빈 살만이 주도하는 700조원 규모의 네옴 시티 건설 사업은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이은 일본 방문이 전격 취소됐다.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무산됐다. 일본과 사우디 모두 방문 무산의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사우디 측에서 전격적으로 결정한 듯하다. 한국과 달리 기시다 총리가 G20 회의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일까? 마치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외교전쟁이 벌어지는 G20에 대해 비웃기라도 하듯 빈 살만은 곧바로 태국으로 이동했다. 유가 및 달러화 강세, 그리고 에너지 공급원이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한 사우디의 독자 행보 역시 탈동조화 현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베트남의 행보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세계의 공장 중국을 대체할 지역으로 주목받으며 가파른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으며, 동남아 지역에서는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시작했지만, 늦춰지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990년대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과의 영해 및 영토 분쟁이 지속되면서 양국 관계는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다. 이 와중에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강화하며, 대중국 견제에 나서는 한편, 경제적 호황을 맞이했다. 그런데 지난 10월 31일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 국민의 이익을 위한 협력강화’를 골자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자리였다. 경제적 부흥을 기반으로 베트남 역시 독자적 행보를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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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가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내 기업 총수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방한 후 일본 일정을 취소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출처: 연합뉴스)
◆탈동조화 흐름 속 한반도

이렇듯 각 지역의 주요 국가들이 미-중 경쟁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틈새를 비집고 독자적 외교 노선을 걷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 탈동조화 현상에 일조하는 것이다. 지정학 영향은 지리적 영향과는 다르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다고 해서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지리와 정치가 맞물리는 것이 지정학이다. 탈냉전 이후 수십년 동안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라는 지정학적 영향이 미-중 경쟁이라는 양극 체제로 치닫는 와중에 지역의 영향력 있는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지향하며 이합집산에 여념이 없다. 거대 게임의 와중에 지정학적 역학관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정학이 중요한 이유다. 

단기적 현안에 집착하느라 큰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위기는 큰 사이클을 그리면서 어느 시점에 어느 지점에서 현실로 다가설지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반도는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다는 지정학적 환경이 주어진 조건이라고 탓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정학적 환경은 시대적 변화와 함께 변화하기 마련이다. 한반도에 주어진 지정학적 환경도 한국경제의 성장과 함께 변화한다. 

시진핑 정권 1기 당시 중국은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보였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후 첫 방문지를 북한이 아닌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반발하며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국을 중국편으로 끌어들이면 자연스럽게 북한은 따라올 것이라는 지정학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는 시진핑이 말하기를 한반도는 원래 중국이었다고 했다는 내용을 자신의 SNS에 올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중국은 북한편, 미국은 한국편이라는 기존의 지정학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한국의 성장과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역으로 해석해 보면 한국 역시 지정학적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쟁이 아니라 수많은 건설적 논의와 논쟁들이 우리 사회에서 활성화되면서, 한국이 처해진 지정학적 환경을 한국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용어설명]

◆탈동조화(디커플링)

한 나라 경제가 특정국가 혹은 세계 전체의 경기 흐름과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모건스탠리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강한 성장을 지속하는 경우는 하드 디커플링, 경기 둔화의 영향을 받지만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은 경우는 소프트 디커플링으로 구분된다. 주가가 하락하면 환율은 상승하고 주가가 상승하면 환율은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이와 달리 주가가 하락하는 데도 환율이 상승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르는 현상, 수출이 증가하는 데도 소비는 감소하는 현상, 서구의 증시는 상승하는데 아시아 증시는 전체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등도 디커플링에 속한다. 

◆마셜플렌

마셜 플랜(Marshall Plan)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서유럽 16개국에 행한 대외원조계획이다. 정식 명칭은 유럽부흥계획(ERP)이지만,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조지 마셜이 처음으로 공식 제안하였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마셜 플랜’이라고 한다.

#지정학 #탈동조화 #디커플링 #마셜플렌 #빈 살만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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