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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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유일한 인간은 아담이 아니라 이브였을 수도 있다.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진화한 양성생식 이전 단성생식이 있었고 생식은 암컷 고유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암수로 나뉘기 전의 단성생물을 암컷으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현대의 유전공학적 성과로 볼 때 난자 없는 수컷은 독자적으로 자기복제가 불가능한 반면 암컷은 수컷의 정자 없이도 자기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메바와 같이 자기복제로 생식하는 단성생물을 암컷과 동일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은 종교적 신념도 과학적 주장도 아닌 진화생물학적 가설과 추론에 불과하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생태계의 문제를 여성성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른바 생태 여성주의로 불리는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이 그것이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과 자연의 동일성에 대한 직시에서 출발했다. 즉, 자연과 여성은 ‘생명출산’ ‘가계를 돌봄’ 등의 속성이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이 인간에 의해 취급받는 방식과 여성이 남성에 의해 취급되는 방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양자 모두 자신의 가치를 박탈당하고 유용성이란 측면에서만 취급되거나, 경제적 논리가 깔려 있는 식민화 방식에 의해 원료, 혹은 상품 등으로 취급되거나, 주체성이 상실된 ‘타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곧 인간이 자연에 대한 착취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들은 그 동안 남성(man)들이 여성(woman)을 지배해 왔듯이 인간(Man)들이 경쟁과 확장을 일삼으며 자연(Nature)을 파괴해왔다고 본다. 따라서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생태계 위기가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이상, 돌봄(care)과 관계(relations)에 바탕을 둔 생태 윤리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경쟁·공격·착취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문화가 생태계 위기를 가져왔기 때문에 앞으로 협력·보존·상생을 강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보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자연과 더 코드가 맞으며 더 잘 공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과 남성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여성다움(배려, 협력, 보호)과 남성다움(지배, 경쟁, 공격)으로 해석돼야 한다. 즉 남성다움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생태계를 파괴해왔기에, 생태계 위기를 넘어서려면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배려하고 협력하고 보호하는 여성다운 미덕이 강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에코페미니즘은 ‘아마조네스’와 같은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여성다움이란 가치 속에 여성을 속박시킨다는 거센 비난을 받을 테지만, 여성과 환경문제는 그 뿌리가 남성 중심의 억압적 사회구조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성(性)의 조화를 통해 모든 생명체가 공생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귀기울일만한 주장이다. 더구나 지나친 경쟁과 발전 이데올로기가 자연과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한 현대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결론은 다를 수 있지만 생태계 위기의 근원이 남성중심적 근대적 세계관에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도구적 합리주의와 과학기술주의 그리고 인간중심주의로 특징지워지는 남성중심적 근대적 세계관이 생태계의 총체적인 위기를 불러왔다. 이러한 세계관 때문에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고,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고 양적 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 또한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에코페미니즘은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전환을 요구한다. 인간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번성은 본래의 가치를 지니며,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생명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축소시킬 권리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자연을 통일된 전체로 보고, 인간의 행위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도 인간의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국한하지 않고, 자연 전체에 어떤 결과를 미치는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한마디로 ‘개체적 자아(self)’를 실현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러한 자아의 배후에 자연과 함께 하는 ‘더 큰 자아(Self)’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한 생태학적 깨달음을 얻게 되면, 환경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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