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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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은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 모려(牡蠣), 굴조개, 석굴, 석화(石花) 등으로 불렀다. 석화는 돌 ‘석(石)’ 자에 꽃 ‘화(花)’ 자로 바닷가 바윗돌에 꽃이 핀다는 뜻의 ‘돌꽃’으로 부르며, 토화(土花)라는 굴도 있다. 물론 토화(土花)는 석화(石花)와 조금 다른데, 토화(土花)는 미네굴이라고 하며 굴과의 바닷물조개로 굴이나 토굴과 비슷하지만 더 크고 긴 타원 모양이다.

굴은 보통 여름에 번식하며, 식용으로 쓰이기까지는 3~5년 정도 걸린다.

그러나 굴이 제일 맛있는 계절은 겨울철이다. 겨울철이 아니면 제대로 굴 맛을 즐기기 어렵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강원도를 제외한 7도의 토산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굴은 지방마다 향과 맛이 다르다. 남해안 굴은 크고 시원하지만 서해안 굴은 작아도 맛이 진하고 담백하다.

우리나라는 참굴, 토굴, 강굴, 바윗굴 등 굴 종류가 많지 않지만 종류가 다양한 미국이나 유럽의 굴 마니아들은 입맛에 따라 산지별로 굴을 골라서 먹는다.

굴은 전통적으로 서양 사람들이 날것으로 먹는 해산물 중에 거의 유일했다. 특히 날것을 좋아하는 우리보다도 더 원초적으로 먹었으니 우리는 보통 생굴을 초고추장이나 겨자 간장에 찍어 먹는데 서양에서는 아무런 조미 없이 그대로 먹거나 레몬주스를 뿌려 먹는다.

굴은 날것으로 먹거나 요리해서 먹는데, 그 중에 김장김치 담고 난 후에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먹는 돼지고기 보쌈도 맛있지만, 김장김치 담그면서 굴 한 점 올려놓고 먹는 ‘굴보쌈’도 별미다.

토화(土花)로는 토화적을 만들거나 젓갈을 담그고. 석화(石花)는 굴김치·석화저냐·굴죽·굴국·굴젓을 만들거나 굴회로 먹는다.

그러나 굴 음식으로 전통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굴김치’라 할 것이다. 굴김치를 한자로는 ‘석화침채(石花沈菜)’ ‘석화저(石花菹)’라고 한다.

굴을 식용한 역사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패총(貝塚)에서도 발견되는 등 오래됐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 홍만선(洪萬選, 1643년∼ 1715년)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제2권 치선(治膳) 어육(魚肉)편에 ‘굴김치(石花沈菜)는 굴을 깨끗이 씻어 소금을 치고, 무와 파 흰줄기를 가늘게 썰어 소금을 넣어 간이 배거든, 간국(醎汁)을 쏟아내어 끓여서 항아리 안에 갈무리해 둔다. 간국이 미지근해지거든, 굴·무·파를 한데 담되, 반드시 굴과 간국의 양이 서로 알맞게 해 따뜻한 곳에 옷이나 이불로 덮어둔다. 하룻밤 지나면 먹는다’라고 기록됐다.

굴김치는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이 1554년 어숙권(魚叔權)의 ‘고사촬요(攷事撮要)’를 개정해 삭제 또는 증보한 책 ‘고사신서(攷事新書)’에 ‘淨洗石花,加鹽,又取蔓菁蔥白切作細片,加鹽,待其鹽透,傾出醎汁煮之,貯於缸中,候其微温,同沉石花、菁、蔥,必使石花與醎汁多少相均,置諸温處,覆以衣被,經宿食之. 굴을 깨끗이 씻어 소금을 치고, 순무(蔓菁)와 파 흰 줄기를 가늘게 썰어 소금을 쳐서 간이 배이면, 간국(醎汁)을 쏟아내어 끓여서 항아리 안에 갈무리한다. 간국이 미지근해지면 굴, 순무, 파를 한데 섞는데, 반드시 굴과 간국의 양이 서로 알맞게 해 따뜻한 곳에 옷이나 이불로 덮어둔다. 하룻밤 지나면 먹는다’라고 돼 있다. 역시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고사십이집(古事十二集)’ ‘해동농서(海東農書)’ 등 위 문헌에 나오는 굴김치 조리법은 ‘굴은 깨끗이 씻어 소금에 절인다. 순무와 파의 흰 부분을 가늘고 얇게 편(片)으로 썰어 소금을 넣어 절인다. 절여진 뒤에는 소금물을 따라낸 뒤 달인다. 소금물이 따뜻할 때 항아리에 넣고 굴, 순무, 파를 함께 넣는다. 항아리를 옷이나 이불로 덮어 놓고 따뜻한 곳에 하룻밤 뒀다가 먹는다’라는 담는 법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는 초가을에 배추를 잘라 절였다가 실고추, 미나리, 파, 생강, 마늘을 채 쳐서 넣고 굴과 함께 버무려 삼삼하게 익힌다고 했다. 또 1795년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맞아 수원으로 행차한 내용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수라상에 ‘석화잡저(石花雜菹)’가 나온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조리법이나 재료에 관한 설명 없이 명칭만 나오고 있어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궁중에서도 굴을 넣어 만든 김치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최초 조선 요릿집인 명월관(明月館) 김치 담그는 법에도 굴김치가 석화저(石花菹)로 나오는데, ‘굴을적업시골나 물을빼인후에 소곰치고 실고쵸와파를채처 너엇다가 수힐후에 먹나니라 굴을정히씨서 물빼이거든 소고ㄹ 대강치고 무와팟대 가리를잘게써러 소곰을처주물어 모다 항아리에 너엇다가 소곰이 다 젓거든 소곰국물만 따라내여 끄려서 조곰뜻뜻할때에부소디 짜고숭거운것을 골으게하고 더운곳에두고 이불로덥흔지하로밤이면 먹나니라. 굴을 껍데기가 없게 고르고 물을 뺀다. 소금을 치고 실고추와 파를 채 쳐 넣었다가 수일 후에 먹는다. 굴을 깨끗하게 씻어 물을 빼고 소금을 조금 치고 무와 파 밑동을 잘게 썰어 넣고 소금을 쳐서 주물러 항아리에 담는다. 소금 국물이 생기면 따라내어 끓여서 조금 따뜻할 때 붓는다. 짜고 싱거운 것을 알맞게 하고 더운 곳에 이불을 덮어 하루 밤 두면 먹을 수 있다’라고 돼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諸法)’ ‘조선요리제법’ ‘조선음식 만드는 법’ ‘조선요리법’ 등 문헌에 굴김치 만드는 법이 수록돼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諸法)’과 ‘조선요리제법’의 굴김치는 굴, 무, 파를 소금에 절이고 실고추나 고추(간 고추)를 약간 넣어서 만드는 등 조선시대 것과 비슷하다. ‘조선음식 만드는 법’에서는 겨울철 김치로 소개하면서 굴, 무, 배추 절인 것에 파, 마늘, 생강, 고추 등 양념을 넣어 만든다고 돼 있다. ‘조선요리법’에서는 ‘굴, 무, 배추 절인 것에 배와 미나리를 섞고 파, 마늘, 채 썬 생강과 실고추를 넣은 다음 담그고 설탕을 약간 넣는다. 봄철에 술안주로도 좋다’고 했다.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문헌에 나타난 굴김치는 젓갈을 넣지 않고 담그는 것이 특징이다. 또 굴 한 사발에 고추 두어 개를 갈아 넣거나 실고추를 넣어 너무 빨갛지 않게 담근다. 요즈음에는 멸치액젓을 넣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빨갛게 담그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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