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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마친 뒤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이던 2004년 ‘카드대란’ 당시 말하면서 불거진 관치금융 논란이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다. 

연말 인사시즌을 앞두고 이복현 금감원장이 ‘라임사태’와 관련,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 생각한다”며 발언하면서다. 

앞서 지난 9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라임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처분을 의결했다. 중징계로 분류되는 문책경고로 인해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손 회장의 연임은 불투명해졌다. 

징계 확정 이후 금융권 안팎에선 손 회장의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가능성을 쟀다. 앞서 지난 2020년 손 회장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 소송을 벌여 승소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복현 금감원장이 손 회장에 대한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기류는 바뀌었다. 이 원장은 제재 결정 다음날인 10일 “과거 소송 시절과 달리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당사자가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14일에는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불러 모아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의 선임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라며 “합리적인 경영승계 절차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재차 압박을 가했다. 

관치금융 논란에 이어 인사 외풍 우려감까지 불거지자 “외압이나 특정 임무를 염두해 한 발언이 아니다”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금융권 인사시즌에 금융감독당국 수장의 발언으로 오해와 곡해의 소지가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중함이 부족하고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는 언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금융권의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BNK금융지주의 경우 김지완 회장의 ‘자녀 특혜 의혹’에 대한 금감원 조사 후 불명예 퇴진이 이어졌고, BNK금융 이사회가 회장 후보에 외부 인사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권에서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됐다. 

이 원장의 출신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전례 없는 ‘검사 출신’ 금감원장의 등장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검찰공화국’ 변모 가능성을 점친 가운데, 취임 직후 은행장들과의 첫 간담회 자리에서 ‘이자 장사’ 비판을 내놔 관치금융 논란이 이미 제기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 원장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등의 발언으로 금융사의 운영 체계를 깎아내렸다. 정부가 ‘선진화된 지배구조’라고 평가했던 지배구조 확립을 흔드는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CEO가 비위에 연루됐다면 징계를 받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인사시즌 금융당국 수장의 경영개입 가능성 발언은 금융사의 자율 운영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간 국내 금융사들은 정부의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 등의 폐해로 몸살을 앓아왔다. 최근 들어 국내 4대 금융지주가 관치금융의 휴유증을 이겨내고 국제적으로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번 논란으로 ‘정부에 좌지우지되는 금융권’이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인사 개입 의혹을 아무리 부인해도 금감원에 대한 금융계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숱한 인사 개입 논란이 한국 금융권을 흔들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번 금융권 인사는 어느 누구의 개입 없이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검증 절차를 거쳐 전문인사가 선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권과 결탁한 비전문가로는 세계적인 금융사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외압으로 의심할 만한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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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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