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등 부적절 대응 계속 드러나자 여론 악화일로
민변은 “행정 공백 따른 사회적 재난… 국가책임 명백”
다만 “배상·처벌은 철저한 진상규명 이후” 한목소리
“‘토끼머리띠’ 등 특정 개인 책임 전가 안 돼” 강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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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가 부착돼 있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국가 추모 기간이 끝났다. 그사이 당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참사의 책임이 어디·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참사 당일 압사 우려에 대한 112 신고접수가 빗발쳤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에 참사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112신고 압사 우려 관련 첫 신고는 오후 6시 34분에 접수됐다. 무려 참사 4시간 전의 일이다. 

이후에도 사고 직전까지 9번의 신고에서 ‘압사’에 대한 언급이 있었음에도 4건에 대해서만 경찰관이 출동하고 다른 신고에 대해선 반응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돼 경찰 비판 여론은 확산하고 있다.

애초에 경찰 인력을 적절히 배치해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당일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관이 배치됐다. 이중 상당수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인원이었고,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인원은 이태원파출소 32명 정도에 불과했다.

참사 발생 3시간 전쯤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교통기동대 긴급출동을 요청했지만 집회를 이유로 거절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참사 한시간 전인 오후 9시쯤에 서울 시내 대부분의 집회가 마무리됐고, 야간 근무 예정 1개 부대를 제외하고는 기동대는 모두 해산했다. 압사 우려 신고가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경찰 지휘부의 심각한 오판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부적절한 발언을 하면서 논란을 더 키웠다. 이후 이 장관은 사과했지만 여론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주최가 없는 일종의 현상’ ‘구청은 할 일을 다했다’고 했다가 “송구하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이렇듯 참사가 국가책임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분출되는 가운데 관련자의 처벌이나 국가배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말 도심에선 관련 집회도 열렸다. 그러나 박 구청장의 언급처럼 핼러윈 축제의 분명한 주최가 없다는 점에서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즉 처벌·배상을 논의하려면 책임 소재부터 온전히 가려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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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년진보당·한국청년연대·청년녹색당·청년하다 등으로 구성된 이태원 참사 청년추모행동 소속 청년들이 3일 오후 6시 34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 및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오후 6시 34분은 이태원 참사의 첫 신고 시간으로, 시위는 검은 마스크와 검은 피켓을 든 채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천지일보 2022.11.03

◆“재난안전법·경찰관직무집행법상 책임 명확”

이와 관련 이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참사를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재난안전법) 3조에 근거해 ‘사회적 재난’이라며 국가의 책임임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전을 관리할 구체적인 책임이 있다”면서 “해당 법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모든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 조정한다는 점도 명확하게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도 경찰관직무집행법 2조에서 경찰의 제1호 업무로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고,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피난시키는 일(5조)을 하도록 한다며 책임이 직접적으로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 대법원에서도 어떤 조치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하지 않았을 때는 공무원들에 대해 직무 의무 위반이라고 계속 판시하고 있다”며 “현재 있는 법이나 판례만으로도 이태원 사건에 대한 책임기관들의 책임이 명백하다”고 꼬집었다.

또 주최자가 없을 경우 오히려 정부나 공권력의 안전관리 책임이 크다며 “행정의 공백·부재로 인한 참사에 대해 정치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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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5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주최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시민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윤석열은 퇴진하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등의 손피켓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

◆“홍콩 란콰이퐁서 비슷한 참사… 반면교사 가능했다”

또 서초동의 A변호사는 “형식적으로는 국가배상법상 책임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며 “대통령 소관인 경찰, 오세훈 서울시장, 그리고 박 용산구청장 이렇게 세 주체가 국가배상법상 책임을 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란콰이퐁에서의 압사 참사를 예로 들며 “거기 지형이 이태원과 거의 똑같다. 언덕이 있고 경사가 많은 지형이었다”고 설명했다.

홍콩 란콰이퐁 참사는 29년 전인 지난 1993년 새해 전야제에서 압사 사고로 21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다치는 일이 발생한 참사다. 

A변호사는 “(경찰도) 이태원에 매해 어느 정도 이때 사람이 오는지 대충 파악했었다. 이례적으로 이번만 폭증한 것도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홍콩 사례 등을 얼마든지 반면교사 삼아 이태원 참사를 예방했을 수 있기에 국가배상 책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두 변호사 모두 민사적 손해배상이나 형사적 처벌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지금 논하기엔 아직 드러난 부분이 적다며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배상·처벌 논의에 대해선 먼저 철저한 진상규명이 먼저라며 신중한 접근법을 취했다.

승 위원은 “이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도 모르고 주체가 어디로 올라갈지도 모르는데 국가배상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칫 배상 범위가 축소될 수도 있고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거라 (책임 소재) 마침표가 찍히고 난 다음에 배상 문제를 따져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저에게 울면서 전화하면서 ‘볼수록 112 대처가 화가 난다’ 그러던데, 그게 국민의 마음”이라면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고, 방향이 중요하다. 왜 이렇게밖에 못했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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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청년진보당·한국청년연대·청년녹색당·청년하다 등으로 구성된 이태원 참사 청년추모행동 소속 청년들이 3일 오후 6시 34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 및 엄중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오후 6시 34분은 이태원 참사의 첫 신고 시간으로, 시위는 검은 마스크와 검은 피켓을 든 채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천지일보 2022.11.03

◆중대시민재해 처벌도 가능할까

관련자들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도 거론되고 있다. 해당 법이 규정하는 ‘중대시민재해’ 항목 때문이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설치, 관리상 결함 등으로 인한 재해를 의미한다.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하면 감독의무를 위반한 기관에 벌금형을 부과하거나, 배상책임을 지도록 한다.

그러나 중대재해전문가네트워크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본지에 “일반 공도·도로를 그렇게(공중이용시설 등)으로 지정하지는 않는다”며 중대시민재해 적용을 부정적으로 봤다.

◆“개인 책임? 국가가 안전대책 취했어야”

국가책임을 넘어 참사 당시 인파를 밀었다는 인물들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 상태다. 사람들을 밀었다며 특정된 이른바 ‘토끼머리띠’ 남성은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현장에 있던 특정 인물에 책임을 묻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주희 변호사는 “행정의 공백이 없었다면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음에도 이 사건의 책임을 일부 개개인의 시민들에게 돌리려고 하는 이런 그 상황에 대해서 매우 우려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도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되진 않아야 한다”며 “결국은 국가나 아니면 공적인 기관이 자기가 취했어야 할 안전 대책이나 이런 것을 오히려 면피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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