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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조문을 마치고 오열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0.31

버튼만 꾹→기관 간 동시 연락

이번 참사에 고작 195초 사용

행안부 “작동 잘 안됐다” 인정

국무조정실 “조사 이뤄져야”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제2의 세월호참사’를 막겠다며 1조원이 넘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이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과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재난통신망이 이번 참사 때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재난안전통신망은 버튼만 누르면 경찰·소방·지자체 등 관계기관 간 동시 연락할 수 있는 4세대(PS-LTE) 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국 단일 통신망으로 국가적 재난 발생 시 음성·사진·영상을 전송하며 의사결정권자의 효율적인 대응 지시와 경찰·소방·지자체 공무원들의 동시 음성·영상통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 통신망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 처음 논의됐다가 세월호 사고 당시 군·경이 서로 다른 채널로 소통하면서 구조 활동이 늦어지자 그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후 정부는 2018년부터 총 1조 5000억원을 투입해 구축에 착수, 지난해 완료했다. 이미 지난해 전국적으로 19만 8000대의 무전기가 보급되면서 경찰과 소방은 실전 활용을 위한 훈련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세월호라는 참사를 겪고도 이번 참사가 되풀이되면서 ‘값비싼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최초 통화 시간은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41분으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19 첫 신고가 접수된 밤 10시 15분보다 1시간 26분 뒤에서야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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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축제현장에서 인파가 몰려 인명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구급대원들이 시신을 이송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0.30

가장 발 빠르게 나섰어야 할 용산구 재난상황실은 다음 날인 30일 오전 0시 43분이 돼서야 재난통신망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도 이보다 2시간이나 뒤인 같은날 새벽 2시 38분이 첫 통화였다. 이때는 이미 압사 참사가 벌어지고도 한참 뒤였다.

관계기관 간 활용도 또한 미미하다시피 했다.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재난통신망을 이용한 통화량은 서울재난상황실 183초, 용산재난상황실 10초에 그쳤다. 행안부가 끝내 밝히지 않고 있는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2초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총리실 국무조정실 측은 “그간 오랜 기간 구축해온 재난통신망이 재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며 “관련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 측도 “평소 통화그룹에 지정된 기관들이 버튼만 누르면 다 연결해 통화할 수 있는 체제가 돼 있는데 이번에는 그 부분이 잘 작동이 안 된 부분은 있다”고 인정했다. 또 “재난통신망에 문제가 있다거나 통화가 안 됐다든가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유관기관 간 통화를 해야 하는데 그룹으로 묶어놓은 부분을 사용 안 한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행안부가 밝힌 지난달 29~30일 이틀간 이태원 지역에서 활용한 단말기 대수 등 재난통신망 현황을 보면 ▲경찰 1536대(사용시간 8862초) ▲소방 123대(1326초) ▲의료 11대(120초)다.

아울러 이번 이태원 참사가 ‘육상 사고’로 분류되면서 수많은 112신고들이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접수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행안부 측은 “재난관리법상 경찰이 재난관리기관에 포함되지 않아 상황실로 전달이 안 되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경찰청과 협의해 신고를 취합할 수 있도록 법적인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사후약방문식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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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태원 참사에 따른 국가 애도 기간인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11.03

◆국민 지킨다던 국가는 어디에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인파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좁은 경사로에 몰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깔렸다.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3년 만에 열린 축제를 맞아 하나둘씩 모인 청년들은 그렇게 사회안전망 밖에서 156명이나 목숨을 잃어갔다.

정부와 경찰이 신고 접수·대응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인 것뿐 아니라, 각 부처의 해명과 달리 애당초 그간 반복돼온 경험을 토대로 거리를 통제하고 폴리스 라인을 치는 등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들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정부 당국, 행안부·서울시·용산구 등 모두가 책임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데다 사고 사흘 만에 입장을 번복하는 사과, 그리고 속속 드러나는 각 기관들의 무사태평주의 예방과 안일한 대처로 국민들의 슬픔이 분노로 변했다.

무엇보다 참석자들을 탓했던 참사 발생 당시와 달리 올해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렸던 과거에도 이 같은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 안전관리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발생한 ‘인재(人災)’라고 보는 시각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참사처럼 사고로 희생된 책임을 일반 시민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지켜줘야 할 기본책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는 위령법회에 참석해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안다”며 “유가족과 치료 중인 분을 더욱 세심히 살피고 끝까지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정부 #행안부 #재난통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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