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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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달팽이 걸음만큼 느리지만 조금씩 증가해 왔다. 박근혜, 문재인 정권 때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확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예산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확대돼 왔다. 

윤석열 정부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소득 1~4분위)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내년 예산을 5조 6000억원이나 삭감했다. 유형 통합 예산을 감안하더라도 5조 2000억원을 삭감했다. 윤석열 정부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역대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저소득층과 서민에 관심이 없는 정부라는 비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복지, 민생 우선을 내세우면서 그들의 행복과 직결되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한다면 비판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도 아니고 무려 25%나 삭감하는 안을 내놓았다. 약자 복지는 허상일 뿐이다. 

지난여름 서울 신림동과 상도동에서 수해가 나서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들이 네 사람이나 목숨을 잃었다. 반지하 참사가 난 지 얼마나 됐다고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인가! 지하·반지하방에 사는 가구가 30만이 넘는다. 김병욱 의원실에 따르면 ‘침수위험지구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가 4만 6964가구에 이른다. 반지하방 거주자들은 여름이 두렵다. 앞으로 기후 위기 때문에 더 큰 수해가 날 가능성이 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한국 사회는 소 잃고도 외양간을 안 고칠 뿐만 아니라 소를 잃었는지조차 모른다. 소 잃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잠시만 기억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외양간이 부실한지 점검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정부, 국회, 사법부, 정치권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만 몰입하고 있다.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생각해보려 하지 않고 자리를 즐기는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공공임대주택 예산 25% 삭감안에 대해 우려스럽다는 논평 한마디 없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싹둑 잘려나가는데도 국회 의석을 1/3이나 점유한 정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해 불가다. 앞으로 국민의힘은 민의를 대변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 

더욱 심각한 것은 국회 의석 과반을 점유한 민주당이 아무 말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말이 옳은지 증명하려면 도시빈민과 청년,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맞다. 예산안 나온 지 한 달이 다 되지만 민주당은 말이 없다. 그러면서 서민과 중산층 정당이라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이면 신뢰를 잃는다. 

국회 앞에서는 “내놔라 공공임대” 구호를 내건 24시간 철야 노숙 농성이 열흘 넘게 진행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원 이상 삭감한 정부 여당을 강력히 규탄하는 동시에 침묵하고 있는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거대 보수 양당은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25% 삭감안에 침묵하고 있다. 이런 걸 두고 한통속이라 한다. 

두 정당은 북한, 일본 관련 문제를 제외하면 같은 정당이라고 할 만큼 입장이 흡사하다. 재벌과 민생 문제에 있어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매우 다른 듯이 행동한다. 두 정당은 민생이 아니라 정권 유지나 정권 쟁취를 위해 싸운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물가는 치솟고 금리는 오르고 실직의 위험은 커지고 있다. 월급은 제자리다. 서민들은 기댈 정치세력이 없다. 그래서 더욱 암담하다. 올해도 얼마 안 남았다. 거대 정당들은 무익한 정치투쟁은 멈추고 민생을 위한 경쟁과 대결을 펼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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