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업계 규제 ‘철퇴’ 내리나
5년간 62건 중 53건 간이심사
올해도 11건 중 7건 심사 제외
“자산·매출 기준 현실성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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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사옥.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무분별한 인수·합병에 열을 올리는 플랫폼 업계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의 현행 기업결합 심사기준이 업계 현실과 맞지 않아 사실 여부만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른바 ‘플랫폼 공룡’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차단하기 위해 기업결합 심사 기준을 개정할 방침이다. 다만 자산·매출 규모 범위를 확대하는 등 신고 대상을 늘리는 방안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신고기준을 변경하려면 공정거래법과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사건의 발단은 ‘카카오 먹통 사태’에서 비롯됐다. 지난 15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SK C&C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 서버 전원이 차단되면서 카카오·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특히 월간 이용자 수가 4340만명에 달하는 등 국민 대부분이 사용하는 서비스였던 만큼 파장이 컸고, 사태의 원인으로 플랫폼 업계의 무분별한 ‘몸집 키우기’가 지목되면서 정부도 칼을 갈기 시작했다. 서비스 품질 향상은 뒷전인 채 단기 이익에만 매몰됐다는 것이다.

또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의 허점이 플랫폼 업계의 몸집 키우기에 촉매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회 개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공정위에서 받은 ‘카카오·네이버 기업결합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7년 8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카카오가 신고한 기업결합 62건 중 53건은 ‘간이심사’로 결합승인 됐다. 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만 따지는 간이심사가 10건 중 9건에 달하는 셈이다. 네이버도 같은 기간 22건의 기업결합을 신고했지만 18건이 간이심사였다.

현재 공정위는 자산이나 매출이 3000억원 이상이 회사와 300억원 이상인 기업이 결합하는 경우에만 신고를 받아 경쟁 제한성을 심사하고 있다. 경쟁 제한성이란 두 회사가 합쳐짐으로써 독과점이 발생하지 않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공정위가 이 같은 기준을 둔 것은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행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다. 공정위 관계자에 따르면 공정위가 심사해야 하는 기업결합 심사는 매년 1000여건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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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남궁훈 카카오 각자대표가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다만 올해 5~7월 이뤄진 카카오 계열사 기업결합 11건 중 7건이 신고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심사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공정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와이낫미프로덕션(웹툰 제작) 및 오오티비(예능 콘텐츠 제작) 인수 ▲카카오헬스케어의 네오젠소프트(헬스케어 솔루션) 인수 ▲카카오모빌리티의 위드원스(화물운송 주선자용 솔루션 개발·운영) 인수 ▲넥스트레벨스튜디오(웹툰 제작)의 샌드위치타임(웹툰 제작 툴 거래 플랫폼) 인수 ▲카카오VX(골프 등 스포츠 사업)의 비글(위치정보 기반 운동 앱 운영) 인수 등이 기준 금액을 충족하지 않아 신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공정위가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내놓은 ‘독과점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경쟁 촉진 방안’에선 플랫폼이 여러 분야를 연계, 지배력을 강화하는 특성을 고려해 경쟁 제한성을 심사하는 방법을 보완한다. 다만 자산 및 매출액 심사와 관련해선 기준을 바꿀 수가 없다는 입장이라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플랫폼 업계가 성장 잠재력이 큰 만큼 현행 기준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주장에서다.

특히 스타트업이 많은 업계 특성상 자산이 300억원이 넘는 기업이 흔치 않을뿐더러 거래 금액 6000억원 이상이라는 예외 조항도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카카오 사태로 특정 기업의 독과점이 국민 경제와 일상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해졌다”며 “문어발식 확장의 폐해를 막기 위한 보다 더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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