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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근로자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을 마친 뒤 시민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아파도 못 쉰다… 휴가가 1위

20대는 ‘잡일’ 여성 ‘휴가’ 불만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불만족’

신고 후 회사대처도 ‘낙제점’

“정당한 직장문화 만들어야”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지역은행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신청했는데 상사가 걱정은커녕 ‘진단서만 가져오면 다 병가처리 해줘야 하는 거냐, 병가에도 월급을 줘야 하냐’고 지적하더라고요. 아픈 것도 서러운데 쉬지도 못해 너무 괴롭고 힘듭니다.”

한국인을 만난 외국인들은 누구나 한국인들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국인들의 일하는 시간도 2020년 기준 연간 1908시간으로 멕시코·코스타리카에 이어 OECD 나라 중 가장 길다. 차츰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긴 근로시간과 상명하복·야근·회식 강요 등의 조직문화는 선진화된 직장문화 정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전히 우리나라 직장문화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휴식·평가·위계·소통·예방·대응·사후조치 등 조직문화를 진단하는 6개 영역 25개 지표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으로 68점에 그쳤다.

특히 최근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는 시대임에도 원하는 시기나 아플 때 휴가를 쓰지 못한다는 불만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자유롭게 신고하지 못하고, 신고 후 회사가 제대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았다.

조직문화에 대해 불만이 가장 많은 지표는 ‘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가기 힘들다’(61.2점), ‘아파도 마음 편하게 쉬기 어렵다’(61.4점), ‘열심히 일해도 정당하게 평가를 받지 못한다’(63.2점)가 상위에 자리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을 때 신고자의 신원이 노출될 것 같다’(64.2점), ‘불만이나 고충이 있어도 자유롭게 털어놓기 어렵다’(64.4점)가 뒤를 이었다.

반대로 점수가 높은 지표는 ‘직급이나 적절한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부적절한 호칭을 사용한다’(77.1점),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75.4점), ‘신입사원이나 새 부서원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다’(72.8점), ‘직원들이 사규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72.6점),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교육 등 예방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72.2점) 순이었다.

◆관리자-일반사원 격차 보여

“회사에 미화원이 없어 신입사원과 여직원들이 아침 8시에 출근해 청소합니다. 상사는 9시에 출근해 화분 나뭇잎에 먼지가 있다며 청소를 똑바로 못 한다고 혼을 냅니다. 화장실 수건도 돌아가며 빨아오게 하고 주차장에 잡초 뽑기까지 시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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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 괴롭힘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천지일보 2022.07.15

조직진단 지표는 응답자 특성 중 직급별(상위관리자급-일반사원급)로 큰 차이를 보였다. 병가(아파도 쉬기 어렵다) 지표는 상위관리자의 경우 72.1점으로 평균(61.4점)보다 10점 이상 높았지만, 일반사원은 59.3점으로 상위관리자와 12.8점 차이를 보였다. 지수는 점수가 낮을수록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잡무(허드렛일은 부하 직원들이 해야 한다) 지표는 상위관리자가 81.6점으로 일반사원(70.8점)보다 10.8점 높았다. 신고(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기관에 자유롭게 신고하기 어렵다)는 상위관리자(78.7점)와 실무자(67.6점)·일반사원(70.8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조직진단 25개 지표 중에서 직급이 낮은 일반사원들은 병가와 잡무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았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휴가(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가기 힘들다) 지표는 상위관리자(66.2점)와 일반사원(59.6점)이 6.6점 차이였다.

이와 반대로 성과(성과나 실적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지표는 상위관리자는 55.1점으로 일반사원(67.8점)보다 12.7점이나 낮아 실적 압박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또 평가(열심히 일해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 지표도 상위관리자(59.6점)와 일반사원(67.6점)이 8점 차이나 났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성과와 평가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나이별로는 잡무 지표에서 20대가 68.2점으로 50대(76.3점)보다 불만이 높았다. 성별로는 병가 지표에서 여성이 57.6점으로 남성(64.3점)과 7.3점 차이가 났고 휴가 지표도 여성(58.8)과 남성(63.0점)이 차이를 보였다. 20대는 회사에서 잡무를 시키는 것에 불만이 많았고, 여성은 남성보다 휴가에 대한 불만이 높았다.

공공기관·대기업과 5인 미만 사업장 간 지수는 워라벨이라고 부르는 휴식 지표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공공기관이거나 기업 규모가 클수록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휴가 지표는 공공기관이 69.0점으로 5인 미만(55.5점)에 비해 만족도가 13.5점이나 높았고, 병가 지표도 공공기관(67.0점)과 5인 미만(56.8점)이 10점 이상 차이를 보였다.

권오훈 노무사는 “실력 있는 직원들이 오랫동안 회사에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선 기업 문화가 중요하고, 특히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조직이 정정당당하게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며 “직장 내 괴롭힘 등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납득할만한 과정과 해결이 이뤄지는지는 기업의 평판과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터 내 인권 보장에서 휴가 선택의 자기 결정권은 매우 중대한 문제다. 정당한 휴가 신청이 거부당하는 노동 현장에서 직장인들은 인간이 아니라 회사의 부품 취급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기업의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결국 직원들인 만큼 회사 차원에선 정당한 회사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달 2일부터 8일까지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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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과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7.2전국노동자대회’에서 임금·노동시간 후퇴 저지, 비정규직 철폐, 물가 안정 대책, 민영화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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