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상 ‘최단명 총리’ 불명예
‘대대적 감세’ 추진에 역풍 맞아
시장의 부정적 예측 불러와 악재
파운드화 가치 폭락… 국채가격↓
재무장관 경질 후 반대파 기용
감세안 철회로 보수당 비판 직면
보수당 의원들, 총리 사퇴 압박
‘제2 철의 여인’ 44일 만에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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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빛이나, 방은 기자] 영국의 원조 철의 여인인 마거릿 대처(재임기간 1979~1990) 전 총리의 후계를 자임하는 강경 보수파로 2의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4일 만인 20(현지시간)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이로써 트러스 총리는 영국 내각책임제 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총리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찰스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어서 물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음주 후임자가 결정될 때까지 총리직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영국 내각책임제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직전 기록은 19세기 초반(1827) 취임 119일 만에 사망한 조지 캐닝 총리다.

트러스 총리는 경선 기간에 철의 여인인 대처 전 총리를 연상시키는 노선을 밟아 2의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그는 대처 전 총리의 의상은 물론 말투와 포즈까지 따라했다. 또한 트러스 총리는 대처리즘으로 분류되는 작은 정부친시장주의정책을 내세웠다.

하지만 영국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해 영국 가계의 에너지 요금은 80%가량 뛸 것으로 전망됐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당시 40년 만에 최악의 물가 상승(인플레이션)과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위기로부터 영국을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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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 (출처: 뉴시스)

야심 차게 내놓은 경제정책 역풍 맞아

대대적 감세조치를 진행하려는 트러스 총리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지난달 23일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는 하루 사이 2% 가깝게 폭락했다.

당시 런던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는 1파운드당 1.107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37년 전인 1985년 이래 최저 가치를 기록한 것이다. 영국의 인플레(물가오름세)10.1%까지 오르고 가계 에너지비 부담이 10월부터 1년 새 3배 가까이 뛸 것으로 예측되면서 파운드화 가치는 급락했다.

트러스 정부의 콰시 콰르텡 재무장관은 기업과 투자 여력이 있는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이들의 투자를 유도해 경제성장률을 현 기대치의 배로 늘리겠다는 야심찬계획으로 대대적인 감세 조치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금융시장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트러스 정부의 감세 정책을 살펴보면 우선 원천징수의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 45%을 없애고 40%로 했다. 최저구간 세율은 19%로 낮췄다. 또한 법인세 인상방침을 취소했고, 가계에 부과하는 국가보험료율은 1.25%로 낮췄다.

주택구입 취등록세 부과개시의 주택가격은 405000파운드로 올렸다. 이로써 모든 예산 재원의 세수를 줄이게 돼 결과적으로 5년간 1600억 파운드(250조원)의 세금이 덜 걷히게 됐다.

여기에 더해 트러스 정부는 가계 에너지비 동결안을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가구당 에너지비를 연 160만원씩 2년간 보조하는 셈이다. 최소한 1000억 파운드(160조원)를 정부가 부담하게 된 것이다.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분과 가계 지원비용을 모두 신규 국채발행으로 조달 충당되는 점을 고려하면 부담과 우려가 큰 조치로 분석됐다.

이처럼 다른 예산지출을 줄이지 않고 무작정 감세하는 방식에 대해 인플레 가중과 국가부채 폭증으로 경제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 시장은 보유 영국 자산의 매각에 나섰고, 파운드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이에 대해 미국의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영국의 경제정책은) 선진국이 아니라 신흥개발국이나 할 수준이라고 비판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1.0달러 선까지 고꾸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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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콰시 콰르텡 재무장관.

금융시장 혼란 가중재무장관 경질

영국 금융시장의 혼란이 가중되자 지난 3(현지시간) 당시 콰시 콰르텡 영국 재무장관은 연간 15만 파운드(167000달러) 이상의 소득에 대해 납부하는 최고 소득세율 45%를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40%로 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철회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여전히 부자 감세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파운드화는 926일 기존보다 더 떨어진 1달러당 1.03파운드까지 폭락했다. 여기에 더해 영국 자산에 대한 가치평가도 하락세를 보였고, 영국정부 국채 가격 또한 급락했다.

게다가 곳곳에서 영국 경제의 위기를 보여주는 지표들이 나왔다. 지난 11일 영국 통계청(ONS)은 영국의 6~8월 분기 실업률이 3.5%1974년 이래 48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일자리에 취직하지 않고 취업 의욕도 없는 비노동력인구는 올해 3~5월에서만 252000명 증가됐다. 이는 영국이 1971년부터 관련 통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증가한 수치다.

또한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영국의 기업 중 25만개가 넘는 기업이 문을 닫았다.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 압박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을 발표해 파운드화와 국채 가격 폭락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지난 14콰시 콰르텡 재무장관을 경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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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뉴시스] 20일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가 남편이 뒤에 서 있는 가운데 관저 앞에서 총리 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반대파 전격 기용했지만 오히려 코너 몰려

이후 트러스 총리는 반대파의 중량급 인사인 제러미 헌트 전 외무장관을 재무장관에 전격 기용했다. 그러나 헌트 장관은 지난 17450억 파운드 상당의 감세안 중 320억 파운드를 취소시켜 오히려 트러스 총리를 코너로 몰았다. 이때부터 보수당 하원의원들 사이에서 트러스 총리에 대한 퇴진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가디언,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보수당 경선을 주관하는 1922위원회의 그레이엄 브래디 위원장에게 100명이 넘는 보수당 하원의원이 트러스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요청하는 서한을 제출하려 했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오피니움이 실시한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현시점에서 총선이 실시될 경우 노동당은 하원의석 가운데 무려 411석을 얻는 압승으로 12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보수당은 보리스 존슨 전 총리를 비롯한 중량급 의원을 포함해 현재 의석 가운데 219석을 잃으며 137석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자유민주당은 39, 스코틀랜드국민당(SNP)37석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급전직하한 당 지지율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당 의원들은 급기야 트러스 총리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같은 보수당 하원의원들의 사퇴 압력이 거세지자 결국 트러스 총리는 취임 44일 만인 20일 사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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