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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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자식’은 욕설이다. 좀 점잖게 말하자면 ‘결손가정의 자제’라고 부른다. 중요한 사실은 바로 결손가정 출신의 성인이나 영웅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운명은 생물학적 유전과 사회학적 노력 또는 학습으로 결정된다. 물론 여기에는 운명론자들이 지적하는 끌로 파도 변하지 않는 사주팔자는 제외된다. 운명이 있건 없건 그것은 어차피 인간이 좌우할 수 없다. 생물학적 유전도 물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그러나 이 천부적인 자질이 인간의 의지와 결합되면 엄청난 차이로 벌어진다. 이것이 만물 가운데 인간의 지닌 최고의 가치이다. 기독교 성서에는 어떤 씨는 기름진 밭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자갈밭에 떨어지므로 어디에 떨어졌느냐에 따라 큰 차이로 벌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기독교식의 운명론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자갈밭에 떨어진 씨가 더 위대해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문화인류학자 박정진에 따르면 씨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부계사회가 정착된 후라고 한다. 모계사회에서는 씨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계사회는 씨로 정체성을 구분하지만, 모계사회는 자궁으로 정체성을 구분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부계의 정체성보다 모계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 실제로 주변을 관찰해보면 이부지자(異父之子)끼리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동복지자(同腹之子)끼리는 예상보다 사이가 좋다. 씨야 떠나면 그만이지만 자궁을 공유했던 사이는 진한 동포애(同胞愛)가 있을 것이다. 동포는 ‘자궁을 함께한 사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쓴 글에는 유난히 동포라는 말이 많다. 민족보다는 동포가 더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동포라는 말을 거의 듣기 어렵다. 살기가 좋다는 뜻이다. 동포는 어려울 때 찾기 때문이다. 미셀 푸코의 말처럼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있다. 교포들은 아직도 동포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들에게는 동포가 필요하다.

출생의 미스테리는 신화나 여러 성인 또는 영웅의 사례에서 나타난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복선이 깔려있다. 하나는 신성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감동스토리이다. 후레자식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성장한 것이 더 감동적이다. 그 사례가 바로 공자이다. 공자를 잉태했을 때 그의 아버지 숙양흘(叔梁紇)은 이미 70세에 가까웠고, 어머니 안징재(顔徵在)는 고작 이팔청춘인 16세였다. 사기 공자세가에서도 노인과 아리따운 처녀가 야합(野合)으로 공자를 낳았다고 했다. 공자는 전혀 성스럽지 않게 태어났지만 성인으로 성장했다.

처녀잉태는 예수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유목민족의 신화에 등장하는 그들의 조상이 거의 처녀잉태로 탄생했다. 처녀잉태의 과정은 다양하다. 만주족의 신화에는 붉은 과일을 먹고 잉태했다고 한다. 중국인의 조상 복희(伏羲)의 어머니 화서씨(華胥氏)는 뇌택(雷澤)에 나들이를 갔다가 거대한 발자국을 밟고 복희를 낳았다. 남방의 신화에서는 주로 알을 낳는다. 알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로 처음부터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북방의 신화에서 탄생한 사람은 복희처럼 괴물이다. 역사시대에 태어난 인물들 가운데 씨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징기스칸의 어머니는 예수게이와 정혼했지만 다른 종족에게 납치됐다. 나중에 예수게이가 도로 찾아왔지만 그녀가 낳은 징기스칸은 누구의 아들인지 애매했다. 징기스칸의 맏아들인 주치도 씨의 정체성 때문에 결국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도 그렇고, 신라를 창건한 박혁거세도 알에서 태어났다. 인간의 성생활은 강간이 아닌 이상 모두가 신성하다는 뜻이다.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공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려는 만명부인을 데리고 도망치지 않았던가? 결손가정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언어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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