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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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 간에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상황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다소 이례적이다. 남과 북 어느 쪽도 최근의 긴장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처방책을 내놓는 데 인색하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탄도미사일이나 포사격을 실시하고 있다.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전술핵 문제까지 언급했다. 우리 정부도 과거 정부와는 달리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일본 자위대까지 끌어들여서 남북 간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전처럼 또 무력시위나 대북 압박 수준에서 그칠지, 아니면 국지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정치권, 특히 여당 지도부는 한 발 더 나갔다.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단골 메뉴가 또 나왔다. 물론 핵을 손에 쥐고 있는 미국과는 어떤 얘기도 없이 그냥 해보는 말이었다. 당연히 현실성도 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에 불과했다. 혹여 전술핵을 재배치한다면 어디에 할 거냐는 질문에는 “우리 지역구에 재배치하겠다”는 황당한 발언도 나왔다. 이마저도 쉽지 않자 이번 기회에 NPT(핵확산방지조약)를 탈퇴하고 우리도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무책임한 얘기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 문제까지 ‘정치화’하는 발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의 ‘9.19군사합의’는 물론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도 폐기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1일 출근길 문답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북핵 위기 앞에 어떤 우려가 정당화 될 수 있겠느냐면서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답했다. 겉으로만 보면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 차원에서 뭔가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정치권에서 갑자기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얘기가 뜨거운 정치 이슈로 비화되자 상황을 주시하던 미국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필립 골드버그(P.Goldberg) 주한 미국대사가 1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강한 톤으로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골드버그 대사는 이날 전술핵 재배치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무책임하고 위험한 얘기라고 전제하면서 “전술핵이든 아니든 위협을 증가시키는 핵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긴장을 낮추기 위해 핵무기를 제거할 필요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그동안의 미국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동안 ‘전술핵’ 운운했던 정부와 여당 인사들을 무안케 하는 일침이었다.

여기서 짚어볼 대목은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이나 미국의 입장을 묻는 게 아니다. 굳이 골드버거 대사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국제정세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누구나 파악할 수 있는 문제다. 어떤 방식이든 한국의 핵무기 보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이 미국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특히 한국의 핵무기 보유가 동아시아 정세변화를 어떻게 몰고 갈지도 잘 알면서, 왜 지금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하느냐는 점이다. 그 깊은 속내를 알기는 어려우나 심히 불편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핵심은 ‘안보의 정치화’ 문제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도 안보 이슈는 늘 정치적인 문제로 귀결됐다. 해방 이후나 군사정권 때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민주화 이후에도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서 대북정책은 초미의 정치 이슈였으며 선거 때마다 등장한 단골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대북 이슈를 선거정치에 동원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사례도 있었다. 대북 공세를 통해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다가 오히려 자충수가 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최소한 대북 이슈, 즉 안보 문제만큼은 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하나의 상식으로 굳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정치의 사법화’ 얘기는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안보의 정치화’ 얘기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배경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국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이미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제는 안보의 정치화도 점점 심각한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안보의 정치화를 통해 정치권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핵심은 지지층 결집과 국면전환에 모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비극적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일각의 의도대로 그 현실성이나 유용성과는 무관하게 민감한 시기마다 ‘핵무장’ 운운하면 강성 보수층이 더 결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정세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큰 이슈이기 때문에 정국 흐름의 초점을 단박에 바꿀 수도 있는 ‘국면전환용’으로도 강력해 보인다.

그래선지 안보의 정치화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안보의 정치화를 통해 민심을 얻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핵심 지지층을 끌어안는다고 해서 그것이 국정운영의 동력이 될 수는 없다. 금세 사라질 변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보의 정치화를 통해 강성 지지층을 끌어안았다면 그에 대한 반발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급해도 여당이 취할 적절한 방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안보의 정치화에 대한 더 큰 부담은 미국과 중국 등에서 한국 정부를 어떻게 볼지가 더 걱정이다. 스스로 고강도 자충수를 두면서 외교적 선택지마저 외통수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주변국과의 외교적 협상에는 더 큰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했던 ‘한반도 비핵화’ 기조도 이미 신뢰를 잃고 말았다. 그 정치적 및 경제적 부담 또한 국민의 몫이 될 뿐이다. 안보의 정치화, 그 값비싼 정치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안타깝고도 착잡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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