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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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대한제국이 일본에게 강제 합병당한 이유는 강한 나라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유교주의에만 집착해 공리공론으로 세월을 보냈으며 관리들은 민을 수탈하는 세습악역을 자행했다.

대원군과 명성황후는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원수가 돼 이성을 잃은 싸움판을 벌였다. 황제가 된 고종은 가족 싸움에서 한쪽 편을 들지 못하고 우왕좌왕 무능하기만 했다.

명성황후 민비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돼 비참하게 불태워진다. 역사는 이를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고 기록한다. 궁을 수비하던 시위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1백명도 안 되는 칼잡이 들을 막을 수 없었을까. 대한제국은 이미 국방과 주권을 잃은 나라로 전락됐다.

고종은 즉각 일본에 선전포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시해당할 것을 우려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을 한다. 이를 또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열국이 경쟁해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시기에 국왕을 잘못 만난 것이었나.

왜 이때 광대한 대륙을 정복한 광개토대왕이나 삼국 통일 후 당나라와 선전 포고를 한 문무왕, 임진전쟁의 성웅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은 나오지 않았을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고 했는데 우리 민족은 그런 복이 없었다.

국모 민비 시해 당시 전국에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한 것은 글방에서 공부를 하던 백의 선비들이었다. 민중의 분노와 저항은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항일 의병들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조정은 관군을 보내 이들을 진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행한다. 청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최익현 선생을 체포해 일본군에게 넘겨 대마도로 압송까지 했다.

제천에서 기의한 의암 유인석도 처음에는 잘 싸웠으나 진압됐다. 당시 충주의병은 일본군을 잡아 배를 갈라 하늘에 제사 지내는 등 민비시해에 대한 원한을 풀었다. 지난 40년 전 충주에서 발견된 필사본에 이런 항일기록이 기록돼 있다.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재침략은 임진전쟁이 끝난 지 3백여년 뒤의 일이다. 일본은 대한제국과 싸우지 않고 러시아와 청나라와 전쟁에서 승리, 쉽게 조선을 강제 합병했다. 오늘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같은 결기가 있었으면 대한제국은 어떻게 됐을까.

정진석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이 ‘조선은 일본과는 전쟁이 없이 내분으로 망한 것’이라는 글이 논란이 돼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조선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 왕조를 집어삼켰다.’

야당이 이 말 가운데 ‘조선왕조와 전쟁한 적이 없다’는 한 부분만 떼어 부각시킴으로써 문제가 커진 것 같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이유로 내세우는 식민사관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대한제국 강제 합병의 치욕적인 역사를 가지고 갑론을박 여야가 싸움하는 것은 시기에 안 좋다. 과거의 역사는 잊어서도 안 되지만 흘러간 역사에 집착해 민족의 진로를 여는 데 걸림돌이 돼서도 안 된다.

한·미·일 안보 공조는 북핵을 저지하는 중요한 결속이다. 지금 북한은 연일 동해상에 각종 미사일을 쏘며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다. 대한제국 치욕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열강에 먹히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단합하고 강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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